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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Sep 04. 2021

호르몬 탓이길 바라지만 그건 '나'였다.

'봐'와 '가'가 불러 낸 내면 아이

 침대에서 일어날 때부터 찌뿌둥했다.

 그러더니 결국 ‘손님’이 오셨다. 허리가 아프고 배도 무겁다.

 만사가 귀찮지만 언제나 그러듯 해야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다.

 꾸역꾸역 아침을 준비하고 학교에 보내고 급한 약속이 생겼다는 거짓말로 화상영어도 취소했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누이고 책을 집어 든다.

 하루 종일 이러고 있고 싶지만 이런 컨디션이라면 얼른 해야 할 일부터 해야 한다.


 노트북을 켠다.

 오늘 글쓰기 주제는 아침 신문에서 찾았다.

 한참 키보드와 씨름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아빠’ 아빠에게 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99% 반갑지 않은 전화다.

 난 상냥한 딸이 아니다. 오히려 차가운 딸에 가깝다. 전화를 받는다.

 “아빠 왜?”

 “네가 엄마한테 가보라고 한데 엄마가 간 모양인데, 네가 잘 알아봐.”

 이건 무슨 소리인가?

 내가 엄마한테 어디를 가보라 했다는 건지. 앞뒤 없이 본인 용건을 지시한다.

 순간 정수리까지 신경이 곤두선다. 

 “내가 엄마한테 어디를 가 가보라고 했다는 거야?”

 아빠의 부연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는 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내가 엄마에게 ‘한번 보시라.’고 한 것이지 ‘가 보시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정보를 제공했을 뿐인데 마치 내가 결정을 해서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아빠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그의 스타일이다. 그의 딸인 나는 그런 그의 스타일이 원래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퉁명하게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든 ‘결과’만 보는 아빠에게 늘 불만이 있었다.

 귀찮은 과정에 발 담기지 않는 아빠는 결과가 좋아도 칭찬도 없으면서 결과가 나쁘면 ‘탓’을 한다.

 아마 이 사소한 전화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분명 나도 잘 모르는 부분이라 알아보시라 정보를 드린 것인데 본인은 검토도 안 해보고 툭 나에게 미룬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빠에게 화가 난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어디야?”

 “응 네가 가 보라고 한데 와 있지.”

 아…

 “내가 언제 가 보라고 했어? 한번 봐 보라고 했지. 아빠 전화 와서 나보고 알아보라고. 아빠 엄마는 내가 쉬니 시간이 많은 줄 아나 봐. 나도 바빠. 내가 아빠 비서야?”

 “아니…. 그래, 미안해. 엄마가 알아서 해.”

  만만한 것이 엄마라고 그 버릇은 불혹이 지난 나이에도 고쳐지지를 않는다.

 전화를 끊고 나니 화에 화가 붙어 점점 부정적인 생각만 들끓는다.


 거실에 나와 보니 시답잖은 유튜브를 보고 있는 두 녀석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하라는 문제집은 풀었느냐, 악기 연습은 했느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읽었느냐…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니 TV를 끄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 등 뒤에 한차례 더 쏘아붙이고 소파에 앉았다.

 ‘내가 이러려고 휴직한 줄 아나?’


 화가 나는 마음을 가라앉혀 보려 읽던 책을 펼쳤는데 때마침 엄마가 왔다.

 내가 언제 가보라고 했느냐 봐 보라고 했지부터 아빠는 왜 본인은 알아보지도 않고 시키기만 하느냐 그렇게 툭툭 던지면 받는 사람은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아느냐 일이 잘못되면 내 탓을 할 것 아니냐 등등 엄마에게 서운하고 기분 나쁜 감정을 토로했다.

 엄마는 가 보라고 했든 봐 보라고 했든 그것이 뭐 대수이냐 별일도 아닌데 왜 우느냐 네가 너무 예민하다 등등 서로의 입장이 다르고 피차 기분이 상한 것만 확인할 수 있는 말들이 오갔다.


 엄마가 가고 난 후에도 한참을 울었다.

 울면서 생각했다.

 분명 처음 눈물은 화가 나거나 슬퍼서 흘린 눈물이 아니다.

 요즘은 어떤 말을 할 때 눈물이 동반한다. 이유는 모른다. 물론 나중 눈물은 화가 나서 흘린 눈물이다.

 

 ‘손님’ 때문인가? 

 초경이래 30년간 달마다 나를 힘들게 했지만 특별히 예민하다고까지 여기지는 않았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호르몬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좀 심하다 싶어 다시 나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내 탓’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정’을 함께 하지 않은 사람에게 결론에 대해 평가받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어릴 적 나는 꽤나 중요한 결정들을 혼자서 했다. 대학 진로, 취업, 결혼까지 말이다.

 외로웠다. 두려웠고 누군가 나의 고민을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부모님은 방관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너의 결정을 지지한다. 우리는 너를 믿는다는 태도를 보이셨고 아마도 일찍 철이 든 나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부모님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나에게 최고의 부모지만 그런 부분에서 내가 외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오늘 사건은 이런 나의 내면 아이를 건드린 것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어느 한 부분 외롭고 두려워하는 작은 내면 아이를 끄집어내게 한 것이다.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씩씩한 나의 모습과 대비되는 내면 아이를 들키기 싫었던 걸까?

 두려움에 대한 강한 저항이었을까?

 아빠 엄마를 속상하게 했지만 나도 마음이 편치 않지만

 나는 오늘 나의 내면 아이를 기어이 끄집어내어 마주했다. 그리고 보듬어 주었다.

 이전에는 자존심 상해 혼자 끙끙거렸지만

 오늘은 퇴근한 베푸에게도 보호받고 싶어 하는 나의 내면 아이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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