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것이 어려운 나에게
오전 집 청소를 마치고 소파에 앉았다.
오늘은 커피 대신 캔맥주 하나를 손에 쥐었다.
이런 것도 ‘일탈’일까? 이 시간에 술이라니.
왼손에 맥주 오른손에 리모컨을 들었다.
보고 또 봐도 재미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정주행 한다.
벌써 몇 번째 다시 보기인지 모른다.
창문을 살짝 열어놓았는데 바람이 꽤 들어온다.
맥주 때문에 시원한 것인지, 바람 때문에 시원한 것인지 모르겠다.
딱 한편만 보려고 했는데, 결국 두 편이나 보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만 아니라면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읽다 둔 신문을 마저 읽었다.
아이들이 없는 점심은 대강 때워도 좋다.
싱크대 선반에 반찬용기가 많은 것을 보니 냉장고에 먹을 것이 별로 없겠다.
냉동실에 넣어둔 식빵 한 조각과 참치 통조림에 마요네즈를 섞어 튜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어제 커피 수업에서 내려온 핸드드립 커피에 우유를 넣어 라테도 만들었다.
명절을 앞두고 주문한 싱싱한 귤이 도착했다. 후식으로 귤 2알을 까먹었다.
바람이 시원하길래 옷장 문을 다 열어젖혔다.
옷 가지 사이사이에 시원한 바람이 스며든다.
바람이 좋아 베개 커버도 빨았다.
흔들리는 베개잎을 보니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책을 좀 읽다 문득 ‘이런 것이 호사지.’ 싶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직장인이 되었다.
직장생활 3년 차에 결혼을 했고 3년 후 엄마가 되었다.
나는 일하는 것보다 쉬는 것이 더 어렵다.
아직도 특별한 일정 없이 집에 있자면 왠지 불안하고,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쉬어지는 내가 오늘은 정말로 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벌써 휴직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쉬는 것이 어색한 것을 보니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었나 보다.
나 혼자 쉬는 것이 미안해 남편에게도 휴직을 권했다.
손사래를 치며 싫다고 한다.
본인은 일하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오히려 내가 집에 있으니 본인도 편하게 일할 수 있고 아이들도 안정감이 느껴진다며,
쉴 수 있을 때까지 쉬라고 한다.
진심이다. 이 남자.
휴직을 하면 큰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모든 것이 평온하다.
호사가 별 것이냐?
이렇게 쉴 수 있다는 것, 돌아갈 직장이 있다는 것이 호사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