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스트 vs. 제너럴리스트
엄마가 되고 매일 빼놓지 않고 십 년 넘게 지켜오는 루틴이 있다.
아이에게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큰 애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무제한으로 책을 읽어주었다.
심지어 성대결절로 고생하던 시기에도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딱 세 권씩 읽기로 규칙을 정한 건.
아이들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초집중해서 듣는다.
글을 읽느라 나는 발견하지 못한 미세한 그림의 차이도 아이들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잘 찾아낸다.
수십 번을 읽은 책도 여러 권 있다.
실수로 두 장을 한꺼번에 넘길 때면 귀신같이 알고 “엄마, 잠깐~!”을 외친다.
글밥이 늘어나며 가끔 꾀도 생기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나란히 누워 책을 읽겠나 싶어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이가 벌써 수십 번 읽은 글밥이 제법 되는 그림책, <세이의 크레파스>를 또 뽑아온다.
책에는 열두 가지 색 크레파스가 등장한다.
색깔마다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다르다.
빨강은 예쁜 꽃, 위험한 곳을 나타낼 때 쓰이고,
파랑은 시원한 물, 노랑은 귀여운 병아리, 나비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파랑과 노랑이 합쳐져 무성한 나뭇잎을 나타내기도 한다.
검은색은 세이 아빠 턱수염이나 나쁜 무언가를 나타낼 때 쓰인다.
잃어버린 주황색 대신 빨강과 노랑이 힘을 합치기도 한다.
서로가 어울려 조화를 이룰 때, 서로 나누어 하나를 이룰 때 그 어떤 색깔도 될 수 있다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책의 결말과는 다르게 나는 전혀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나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는데, 이렇다 할 뚜렷한 특기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다 보면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한 분야, 그것이 자기의 업(業) 일 수도, 취미일 수도 있는 일을 꾸준히 했고
그것을 특성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세울만한 ‘주특기’가 없는 것이 문제다.
그냥 다 고만고만하게 잘한다.
고만고만하게 잘한다는 것은 어느 것 하나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른 것은 다 못하는데 어느 하나를 도드라지게 잘하는 사람과
어느 것 하나 못하는 것은 없지만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사람 중 누가 더 답답할까?
나는 후자가 더 답답할 것 같다. 애매한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로 연결하기도 후자보다 전자가 훨씬 수월해 보인다.
이런 고민을 한지가 꽤 되었기 때문일까?
엉뚱하게 아이 그림책 읽어주다 나의 고민까지 소환하다니.
한 편으로는 내가 뚜렷한 색깔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색깔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지 억지를 부려본다.
모든 색을 합치면 검은색이 되는 것처럼
가지고 있는 여러 색깔이 섞이다 보니 뚜렷한 하나의 색깔로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이 융합이라고 하니,
나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되기보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되는 쪽으로 선회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