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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Aug 24. 2021

TV가 알게 해준 진실

나를 알아가는 과정

“의대 갈 꺼야?” “왜 이젠 북에 가고 싶은 거야?” 


 늦은 밤 퇴근할 때마다 TV에 눈을 떼지 못하고 앉아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신기한 듯 말한다. 

한 때 온 국민이 다 본다는 넷**스에 꿈쩍 않던 내가 이제 곧 넷**스의 독주를 견제할 디**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한다는 지금 빠져버렸다. 



 우리집은 한 동안 TV가 없었다. 

 아이들 때문이기 보다 퇴근 후 야구시청에 빠져 있는 남편이 얄미워서 아이를 핑계삼아 버려버렸다. TV앞에 몇 시간째 앉아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시덥지 않은 농담과 깐죽거림, 다 짜맞춘 대본, 과한 리액션의 먹방, 유용한 지식도 깊은 깨달음도 없는 TV프로그램에 왜 금쪽같은 내 시간을 할애하냐는 말이다. 그렇게 호기롭게 없앤 TV가 다시 우리집 거실에 배치한 건 두 달전이다. 


 초등학생 아이들 영어공부 책을 보다 영상과 책을 함께 노출하면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잠**영어, **아빠표 영어 유튜브, 디즈니 영화로 영어배우기 등등 영상을 활용한 외국어습득 우수사례들이 내 호기를 가볍게 꺾어 버렸다. 그렇게 우리집 거실에는 십여 년 만에 TV가 자리하게 되었다. 


 TV가 집에 오기 전 아이들과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집 TV는 영어학습용 기기이다. 넷**스는 영어로만 볼 수 있고 당연히 TV도 영어학습용으로만 켤 수 있다고. 과연 그랬을까? TV를 없애기로 한 것도 TV를 다시 사기로 한 것도 나 혼자 결정했다. TV를 보는 규칙도 물론 내가 정했다. 언제나 그러듯 우리집 남자들은 받아들일 뿐이다. 역시 TV는 강적이었다.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라는 우리집 대명제를 아주 우습게 깨버렸다. ‘규칙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추가해야 할까? 


 서두에 이실직고했듯이 우리집 TV는 영어학습기기를 넘어 맹활약을 떨치고 있다. 아이들은 유튜브를 대형 화면으로 옮겨 보기 시작했고, 남편은 게임기로 쓰기 시작했다. 

 그토록 TV시청에 단호하던 나는 미드 <a good doctor>와 <사랑의 불시착>을 새벽까지 몰아보고 있다. 2년 가까이 지켜오고 있는 새벽기상이 위협받는지 몇 주 째지만 여전히 밤마다 내적 갈등과 씨름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TV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금 알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역시나 나는 ‘중간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 나는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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