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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Aug 24. 2021

누가 시키지 않은 일

나를 알아가는 과정

 창문을 한 마디쯤 열고 잤는데, 꽤나 시원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거무스름한 창 밖 풍경이 참 좋다. 

 여름내내 아침마다 만나던 아이스커피와도 곧 헤어질 시간이 온 듯하다. 

 오랜만에 우유를 데우고 따뜻한 카페라떼를 만든다. 진한 흑갈색 커피에 하얀 우유가 아지랑이를 피운다. 금방 올라온 커피향에 기분이 좋아진다. 두 손으로 머그컵을 감싸 코 밑에 갖다 댄다. 

 하루 중 가장 처음 만나는 잠깐의 행복. 



 사실 요 몇 주간 의욕을 잃었다. 밀도 있게 살아야 한다고 채근하던 나는 어디론가 가버린 듯하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없다. 이것이 평온한 일상인지 재미없는 일상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별로이다. 이 기분이.


 눈을 감아본다. 이 감정이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조용히 들여다본다.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까울 뿐인데, 나는 왜 무기력할까? 책을 읽어도 뻔한 이야기 같고, 강의를 들어도 같은 말인 것 같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매일이 참 재미없다. 


 글을 쓰면 나아질까? 언젠가는 내 이름의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매년 버킷리스트에 올해는 꼭 책을 출간하리라 호기롭게 날짜까지 적어 두었다. 그리고 그 소망은 늘 리스트에 남겨졌다. A4 100장을 쓰면 책 한 권 분량이 나온다고 한다. 시작은 몇 번 했었다. 번번히 열 장을 넘기지 못했다. 이제는 블로그에 남기던 육아일기도 접은 지 수 개월 째다. 그토록 바라던 ‘브런치 작가’가 되고도 발행한 글이 열 손가락을 넘기지 못했으니 ‘책 출간’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창피하다. 작가도 아니면서 깜빡이는 커서와 눈싸움 하기 일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자는 번번히 내 쪽이다. 그러던 중 책과 강연 기획프로젝트 ‘백백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루 1장의 글을 100일동안 써내는 것이다. 제대로도 아니고 꾸준히만 쓰면 된다.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을 번번히 해내는 나인데, 이번에도 해내고 싶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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