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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Aug 31. 2021

그 여자의 가을

엄마가 되어 알아가는 나


일찍 눈이 떠졌다. 핸드폰을 보니 새벽 세시 사십분이다. 열려 있는 아이방문을 닫고 커피를 내린다. 언제 맡아도 좋은 커피냄새, 새벽 커피 맛은 특히 구수하다. 투샷을 내렸어야 했다.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그 동안 너무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은 탓일까?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조급하지 말자. 충분히 잘 하고 있다. 제대로 가고 있다.” 최근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전과 같은 일상인데 요즘은 순간순간 다르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내공이 부족한 것 같다. 말로는 조급하지 말자고, 잘 하고 있다고 하면서 머리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며칠 전 아이 바이올린 연습을 시키다 아이에게 거의 퍼붓다시피 했다. 깜짝 놀랐다. 이 아이에게 이렇게 화를 낸 적이 있던가? 아이는 얼마나 놀랐을까? 엄마가 아닌 ‘성난 괴물’로 보였을 것 같다. 왜 그렇게 화를 낸 걸까? 화가 나 있는 내게 아이가 울면서 안긴다. 내 어깨에 기대 흐느껴 울던 아이가 고개를 들더니 말한다. "엄마, 다음부터는 내가 잘 할게." 아....... 그 말은 아이가 아닌 내가 했어야 했다. 아이의 나이만큼 엄마도 성장한다는데, 둘째 아이만큼 다시 나이를 거꾸로 먹었나 보다. 다행히 아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해맑다.


자연도감에서 봤을까? 형에게 들었을까? 예쁜 것은 독이 있다고 한다. 바이올린 레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핀 이름모를 꽃을 보며 말한다. "엄마! 이건 독이 있어." "왜?" "예쁘니까." 아이가 나를 돌아보며 한마디 한다. "엄마! 엄마는 맹독이 있어." "왜?" "엄만 많이 예쁘니까." 양 볼 깊이 보조개를 만들며 아이가 웃는다. 나도 활짝 웃어 보이며 아이에게 내 사랑을 전해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내와 엄마가 되었다. 누구의 딸일 때보다 훨씬 많은 삶을 살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고 감당해야 하는 숙제가 늘어났다. 고단할 것 같지만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단단해지고 풍성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냥 '되어지는' 일은 아닌 듯하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애씀이 필요하다. 가끔 전철을 탈 때가 있다. 앞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스캔해 본다. 표정은 말할 것도 없고 저마다 주름의 방향과 깊이도 다르다. 눈가 주름은 많이 웃어서 생긴 주름일 것이다. 미간 주름은 인상을 많이 써서 생겼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인생이지만, 어떤 모습일지는 온전히 각자의 몫이다.


잎이 우거진 아름드리 나무처럼 풍성한 삶을 살고 싶다. 때때로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고 형형색색 빛깔도 뽐내면서 누군가에게는 넓은 그늘도 만들어 주는 커다란 나무 같은 인생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어떤 거름을 주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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