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지현 May 06. 2021

그 여자의 여름

여름을 닮은 나......

“제가 나이가 많아서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이가 아직 어려요.”

“집이 멀어서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요.”


대학원 오리엔테이션 날이다. 자기 소개시간이 되자 선생님들이 한 마디씩 볼멘소리를 한다. 살짝 실소가 나온다. 서른일곱, 일곱 살, 세 살 두 아이 엄마로 여수에 사는 나는 서울 한 복판 대학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다. 3시간 강의를 듣기 위해 고속열차(KTX)를 타고 왕복 8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2년동안 다녔다. 굳을 대로 굳은 머리로 주경야독이 힘들었지만 누가 시킨 것은 아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다. 오고 가는 열차에서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순간이 희열이었다.



 워킹맘 대부분이 그러듯 내 시간이라고는 없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힘들다고, 쉬고 싶다고 투덜대 보지만 어쩔 수 없음을 안다. 그렇다고 이대로 지낼 수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도 있을 것이다. 새벽 5시 기상, 그것은 내가 찾아낸 묘약이다. 매일 5시를 두 번 만나기 시작한지 500일쯤 되었다. 처음 일 년은 새벽 4시 언저리에 일어났다. 알람 소리에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일어난다. 어떤 날은 알람 없이도 눈이 떠진다.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지나 생각해보지만 그럴 나이는 아직 아닌 듯하다. 온 세상이 채도를 낮추고 있는 그 때, 오직 나만 환하게 빛나고 있다.



 “넌 취미가 공부야? 공부는 엄마 돈으로 하는 거야.” 

삼십 년 지기 정이는 만날 때마다 핀잔을 준다. 무엇이 그렇게 배울 것이 많냐는 말이다. 괜히 스스로 다그치지 말고 이제는 좀 쉬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러는 줄 안다. “나답게 살고 싶은데 ‘나다움’이 뭔지 모르겠어. 심리상담이라도 받아볼까?” 한참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카톡~!” 정이다. 커피 두 잔과 조각 케익 하나를 선물로 보내왔다. “야! 심리상담이 별 거냐! 친구랑 커피 한잔하면서 배고플 때까지 수다 떨면 그게 심리상담이야. 내가 가까이 살면 실컷 같이 수다 떨겠는데 멀리 있으니 대학원 친구랑 커피 한 잔 해.” 함께 고무줄, 발야구하던 꼬맹이 친구가 제법 언니같다. 그 때는 내가 반장이고, 정이가 부반장이었는데……. 그렇게 나는 '마흔앓이'마저도 열심히 앓았다.



 여름에 태어난 이유일까? 유독 여름이 좋다. 살갗에 닿는 따가운 햇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도…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라고 하면 모두들 나와 여름이 닮았다고 한다. 무엇이든 확실한 것이 좋다. 대강대강 하는 것은 질색이다. 싫은 데 좋은 척하는 것도 싫지만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태도는 정말 싫다. 분명한 색깔을 가진 것이 좋다. 두 계절을 모두 포용하는 봄과 가을의 우유부단함보다 덥거나 추운 여름이나 겨울이 냉정하지만 깔끔하다 여겨지는 이유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은 여름을 닮아서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 여자의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