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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May 17. 2021

그 여자의 겨울

딱 한 발만 내딛을 수 있다면......

  흔히들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곤 한다. 이 세상에 와서 아등바등 살다 몇몇의 추억을 남기고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싹이 돋고 잎이 자라 꽃이 피고 지는 그것과 참 많이 닮았다. 궁금했다. 내 삶을 사계절로 나누어 본다면 어떤 모습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닮았을까? 처음으로 나와 조우한 마흔의 봄, 삶의 대부분인 여름, 엄마가 되고 알게 된 가을……


  겨울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겨울을 닮은 시간이 없다. 곰이나 개구리처럼 긴 겨울잠을 자거나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풍성한 잎들을 남김없이 내려 놓는 나무들에게도 겨울은 쉼이자 비움이자 멈춤의 계절이다. 한없이 웅크러트리지만 응축된 에너지가 있다. 적막하지만 외롭지 않다. 겨울은 그렇다. 두 손을 키보드에 올린 채 ‘나의 겨울’을 찾아본다. 도저히 찾아지지 않아 블로그를 뒤지다 작년 이맘 때 쓴 글을 발견하고 혼자 크게 웃었다.



  

  새벽기상을 한답시고 보통 10시 안에 잠자리에 든다. 저녁을 먹고 정리하고 날마다 끝내야 하는 미션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아이들이 읽어 달라는 책을 들고 한참을 서 있어도 "잠깐만, 엄마 이것만 하고..."란 말을 달고 지낸다. 이제는 엄마가 노트북을 키거나 서재방에 있으면 "엄마 미션 하는구나."며 다가오기를 주저한다. 새벽부터 정해진 루틴대로 무엇인가를 처리한다. 물론 이 시간은 나에게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더없이 행복하지만, 어떤 때에는 이 순간조차 무엇에 쫓기듯 보낸다. 하루 세 번 아이들 식사를 챙기고 약간의 집안일을 하는 것뿐인데 무엇이 이토록 몸과 마음을 바쁘게 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어째서 늘 불안한 것일까? 책상에 앉아 밑줄을 치며 쪽페이지를 적고 공부하듯 책을 읽는다.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나가고 강의를 찾아 듣는다. 그 속에 나의 '현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흘려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일상이 미래에 어떤 점들과 이어지며 선을 만들겠지. 안타깝게도 자주 '지친다'는 것이 문제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살고 싶은 지 찾아보자고 만들어낸 '쉼'인데 말이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마음이 편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불안하다. 그냥 시간을 죽이듯 흘려 보내는 ‘너그러움’도 필요한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이 몹시 불편하다. 그렇다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도 아니다. 항상 마감시간에 맞추어 일을 끝내고 소통이랍시고 수시로 SNS을 들여다보며 남의 삶을 기웃거린다. 책을 읽으면 그 책 속에 빠져야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다면 놀이에 빠져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힘을 빼자! ‘지금’에 집중하자. 스스로에게 또 주문을 걸어본다.




  여전히 겨울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겨울의 문턱에서 주저하고 있다. 한 발만 내딛으면 될 것 같은데, 딱 한 발만……. 그 여자의 겨울은 언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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