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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Sep 04. 2021

나의 '뇌'가 익어 간다

자꾸 잊어버리는 나를 위한 위로

 아침 준비하다 핸드폰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오간 동선을 되짚어 다녀보지만 없다. 혹시나 싶어 냉장고 문을 열었다. 

 기억력이 떨어졌다는 일화로 핸드폰을 냉장고 혹은 세탁기에 넣는 장면을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무척 떨렸다. 냉장고를 열기까지 2초 정도 나는 ‘정말 핸드폰이 냉장고 안에 있으면 어쩌지?’라고 걱정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눈알을 상하좌우로 빠르게 굴렸다. 없다. 

안도의 한 숨과 함께 ‘그래서 핸드폰은 어디에 둔 거야?’는 짜증이 올라온다. 

결국 아이들에게 S.O.S를 보낸다. 

“엄마 핸드폰 본 사람~~~?”

“저요!” 

범인이 큰 녀석이다. 본인 핸드폰이 고장 나서 내 핸드폰으로 과제를 찍어 올리느라 가져간 것이다. 

다행히 실종된 핸드폰을 5분 만에 되찾았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 얼른 건강상태 체크를 완료했다.(코로나로 인해 등교 전 매일 학생 건강상태 체크를 보내야 한다) 

한 녀석은 온라인 클래스를 한 녀석은 등교를 한다. 


커피를 내려 옆에 두고 신문을 펼친다. 

매일 아침 일간지 2부를 본다. 꼬박 1시간이 걸리지만 신문은 가성비 좋은 읽을거리이다. 

가끔 신문인지 광고지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까지 모든 영역의 정제된 글을 접할 수 있는 ‘참 좋은 읽을거리’이다. 

오늘 아침 한바탕 작은 소동을 겪은 나를 위한 기사가 눈에 띈다. <당신의 뇌가 ‘열’ 받았기 때문이다> 

기억력이 안 좋아지는 원인 중 하나가 날씨 탓이라고 한다. 

뇌는 매우 민감한 기관인데 날씨에 따라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계절이 바뀔 때는 더더욱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내 기억력이 비단 환절기에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꽤 오래전부터 나는 일상의 많은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며칠 전 내가 했던 말, 이틀 전 먹은 점심메뉴 등이 그렇다. 

열심히 외웠던 영어문장, 책에서 읽은 좋은 구절, 외국작가 이름, 브랜드, 지명 등등은 말할 것도 없다.


한 때는 ‘치매’인가 의심할 정도로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심각하게 내 상태를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의 대답이 걸작이다. 

“기억이 안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어. 네 생활을 봐. 네가 지금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것들은 이미 너에게 오랫동안 기억할 만큼 중요한 것들이 아닌 거야.” 

아주 오랜만에 만난 죽마고우였다. 

그런 친구가 나보다 더 내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 


두 손에 움켜쥐고 낭떠러지에 매달려 눈앞에 내려오는 구조 줄을 잡지 못해 엉엉 울며 살려 달라는 사람에게 누군가 그랬다고 한다. 

“잡은 손을 놓아라. 그래야 다시 잡을 수 있을 것 아니겠느냐.” 

놓아야 다시 잡을 수 있고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한때는 더없이 소중했던 순간도 잊힌다. 

그리고 또 다른 소중한 것들이 그 자리를 채워간다. 

이것이 우리의 삶일 것이다. 

나의 뇌가 노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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