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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Sep 06. 2021

전 재산을 날린 날

내 보물 사랑해

 몇 시간째 울고 있다. 

 처음에는 달래도 보고 위로도 했다. 

 이제 좀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생각난다며 또 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하교 후 피아노, 태권도 학원을 거쳐 바이올린 연습, 수학 문제집까지 다 풀고 

이제 막 좋아하는 게임을 시작한 둘째 녀석이 갑자기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깜짝 놀란 내가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대답도 못하고 ‘꺽꺽’ 댄다. 

 “어디 아파?” 

 한참을 서럽게 울던 아이가 고개를 들더니 울음이 반쯤 섞여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자초 지경을 말한다.


 “엄… 마… 난 그 버튼이 그것인지 몰랐어…… ‘되돌아가기’인 줄 알고…… 눌렀는데…… 내…… 전… 재산이…… 사라져…… 버렸어…… 나 이제 어떡해…?” 


 또박또박 말해도 게임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훌쩍훌쩍 꺽꺽 울면서 말을 하니 일단은 애부터 달래 놓고 보자는 심사로 

 “그랬어? 그랬구나. 어쩌니? 속상하겠다.”를 적절히 반복했다. 


 알고 보니 녀석이 ‘최애(最愛)’하는 게임인데 

 실수로 버튼을 잘 못 눌러 게임 아이템과 코인이 한순간 사라졌다. 

 본인의 전 재산이 다름 아닌 ‘자기’ 실수로 본인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어떻게 모은 거야?” 

 “땅 파서….. 엄청 ‘노가다’해서 모은 재산이야.” 

 “오래 걸렸어?” 

 “응.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열심히 한 건데. 흑…..”하더니 또 운다. 그것도 아주 서럽게. 

 “괜찮아. 다시 모으면 되지.”라는 말 밖에 딱히 위로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했다. 

 “엄… 마… 엄마가 부동산 계약했다 돈 날린 것 기억하지? 그거랑 똑같은 거야. 얼마나 슬픈지 알겠지?” 


 ‘헉’ 느낌이 왔다.  지금 이 녀석이 얼마나 속이 쓰리고 아픈지. 

 지난번 부동산 계약이 틀어지면서 계약금을 포기했을 때 

누군가 나에게 “그 돈, 다시 모으면 되지. 괜찮아.”라고 했다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녀석의 비유가 엄마의 허를 찌른다. 


 좀 달래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삼계탕이다. 

 비닐장갑까지 끼고 닭다리를 뜯던 아이가 또 운다. 

 “엄마, 내가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데…… 자꾸 생각이 나.” 

 아이는 세상 다 무너진 듯한 형국인데,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한 손에는 닭다리를 다른 한 손에는 휴지를 들고 눈물을 훔치고 있는 아이가 눈물 한번 닦고 닭다리 한번 먹고 한다. 


 유일하게 형보다 ‘선배’인 게임이었단다.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 동생에게 형이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그래도 레벨은 유지가 되잖아.” 

 “그거야 그렇지. 내가 아끼던 골드 아이템이 이제 없으니까 슬퍼서 그러지……” 

 

 또다시 울먹이는 아이를 안아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가 네가 다시 코인 모을 때까지 형 그 게임 못하게 막아줄 수 있어.” 

 조금 위로가 되었을까?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색종이를 가져와 접는다. 조금 진정이 된 듯하다. 

 아이를 위로하며 깨달았다. 

 나는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엄마가 못된다는 것을. 

 오히려 아이는 엄마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있음을. 


 전 재산을 잃어 사무치게 슬픈 아이가 오늘은 더 으스러지게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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