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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Sep 01. 2021

엄마도 티 낼 수 있지. 뭐!

엄마라서 그래

 매일 아침 7시 30분이면 큰 아이는 화상영어수업을 한다. 잠에서 막 깨어난 직후라 비몽사몽 할 텐데 아이는 8개월째 꾸준히 하고 있다. 수업시간 동안 되도록이면 아이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장난기 많은 아이가 엄마가 방에 들어가면 엄마의 영어 이름을 부르며 장난을 걸기 때문이다.


 사실 화상영어수업은 아이보다 내가 먼저 시작했다. 꾸준히 해보니 괜찮아서 아이도 함께 하기로 했다.

 보통은 전날 입을 옷을 빼놓는데 어제는 깜빡 잊었다. 옷장이 큰 아이방에 있어 할 수 없이 방문을 열었다.

 야구 얘기를 하고 있던 모양인데 아이가 자기는 야구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Have you ever paly a baseball?” 선생님이 묻는다. 너무도 당당하게 “No.”라고 대답한다. 의아한 선생님이 다시 묻는다. “ever?” 그럼에도 아이는 “No.”라고 한다. 자기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듭 말한다. 야구를 싫어하는지 처음 알았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야구를 해 본 적이 없다니. 아빠와 동생과 휘두른 방망이 횟수만 해도 수십 번일 텐데…..


 

 이 녀석 ‘ever’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이다. “야구를 해 본 적이 없다고? yes라고 해야지.”라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질문을 이해했든 이해하지 못했든 선생님과 둘이 얘기하다 보면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친절히(?) 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No.”라고 한다. No면 어떻고 Yes면 어떻다고 한층 뾰족한 톤으로 “왜 NO야?”라고 쏘아붙였다. 또 “No.”라고 대답한다. 한 마디 더 하려는 찰나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은데.”라는 선생님의 중재로 자칫 불붙을 뻔한 상황이 일단락됐다.


 아이방을 나온 후 스멀스멀 화가 올라온다.

 ‘아니,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줬는데, 무슨 생각으로 계속 아니라고 하는 거야?’

 평소 나와 아이 사이는 무척 좋다. 티키타카 하는 모습이 연인 같다고 남편이 질투할 정도이다. 츤드레 같은 면이 있지만 엄마를 무척 좋아하는 녀석이다.


 아침 테이블을 차리며 곱씹어 본다.

 ‘내가 무엇을 잘 못 한 걸까?’

‘처음부터 친절하지 않았을까?’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엄마 앞에서 못 알아들은 것이 창피했을까?’

 참 별 일도 아닌 일로 아침부터 기분이 상했다.


 수업이 끝나고 식탁에 앉는 아이를 쏘아보며 결국 한 마디 더 했다. “네가 몰라서 엄마가 알려준 것뿐인데, 왜 굳이 계속 아니라고 하는 거야? 그런 태도는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한다고.” 한 풀 기가 꺾인 아이가 “알았어.”라고 짧게 대답한다.


 엄마와 형의 냉랭한 분위기를 감지한 둘째 녀석이 평소와 다르게 열심히 아침밥을 먹는다. 불통이 자기에게 튈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평소처럼 “잘 먹었습니다.”라며 일어서는 큰 녀석에게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엄마라고 기분 상한 것 티 내면 안될 것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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