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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Jun 02. 2021

어느 아침의 흔적

똥깡이의 일상 속에서......

세상에는 너무 당연해서 놓쳐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도 생각도 기록하지 않으면 휘발되곤 한다.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의 모습들이 갑자기 뭉클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비가 오는 센치한 날이라면 날씨탓이겠거니 여기겠지만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확 밀려오는 가슴뭉클함이 당황스럽기도 하다.


시간관리에 철저한 큰 녀석은 무엇을 하든 미리 시간을 정확히 계산한다.

몇 시에 일어나 몇 시에 머리를 감고 아침식사는 몇 시에 시작할 것인지

사거리 신호등 바뀌는 시간까지 기억하고 몇 시 몇 분에 집에서 나가야 하는지까지 말이다.

이렇게 글로 쓰니 굉장히 뽀족하고 예민한 친구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그런 형아 스타일을 알기에 동생의 생존스킬이 작동한다.

스스로 일어나 형아의 루틴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하는 일들을 진행한다.

형아가 화상영어를 하는 30분 안에 식사를 제외한 모든 준비가 끝나야한다.

본인침대에서 엄마침대로 자리를 옮겨 뒹굴뒹굴하는 것도 잠시 토순이만 홀연히 남겨두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앉는다.

본인은 먹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형아보다 먼저 시작해야 한단다.

시리얼을 준비했는데 어제 저녁에 먹은 불고기에 밥을 달란다.

그 쯤이야. 얼마든지 다시 내어줄 수 있다. 


혼자 남겨진 토순이


모든 준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출발까지 십여분이 남았다.

형아는 신문을, 동생은 종이접기를 한다.

같은 공간 각자의 루틴대로 각자의 취향대로 여유를 즐긴다.



"다녀오겠습니다!!!" 

복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인사를 하고

먼저 마스크까지 한 녀석이 엘리베이터를 잡으러 간다.

말하지 않아도 확실한 분업이다. 

현관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뭉클함과 동시에 홀가분함을 느꼈다.


두 녀석이 떠난 흔적을 바라보며 순간의 풍경을 핸드폰에 담는다.

아이들의 사소한 일상이 세상 가장 큰 활력소인 그들의 아빠에게 사진을 전송한다.

아들바보의 예상했던 리액션이 돌아온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나의 할 일은 끝났다.

이제 '나'의 시간이다.

겨우 2시간이면 어떠랴. 

세상 가장 맛있는 커피 한 잔이 기다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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