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이 불어넣은 공기
석 달 전 이사를 했다. 이사하기 전 집에서 2년 반을 살았다.
결혼 후 나는 거의 2~3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했다.
회사가 가장 큰 이유였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사를 하면 가장 성가신 것이 커튼이다.
천정의 높이, 창문의 크기와 개수에 따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애매해지는 경우가 많다.
커튼은 길이가 길면 질질 끌리고 짧으면 발이 없는 귀신처럼 동동 매달려 있고,
창문이 블라인드보다 큰 경우,
블라인드 양 쪽 사이드로 미처 가려지지 않는 외부의 시선을 계속 신경 써야 한다.
이사할 때마다 커튼과 블라인드를 바꾸기에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언제 또 이사할지 모르는데 번번이 새로 맞추자니,
이건 살 때도 돈, 버릴 때도 돈이 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오래 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 집 이사할 때도 최소 4년은 살 것이라 계획하고 거실 커튼만큼은 새로 맞추었다.
차르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흰색 속 커튼도 함께 말이다.
계획은 바뀌라고 있는 것이지.
결국 4년의 절반을 조금 더 살고 이사를 했다.
다행히 새로 이사 온 집 천정은 이전 집과 같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넓어진 평수 덕에 커튼레일이 이전 집에 비해 짧다.
가운데를 기준으로 맞추니 양쪽 한 뼘 씩이 부족하다.
커튼도 아니고 레일 때문에 비용을 지불하기 아까워 그냥 쓰기로 했다.
그런데 창문을 열면 딱 한 뼘 길이만큼의 커튼이 바람을 막는다.
요즘 바람이 참 좋은데, 그
바람을 한 뼘이나 커튼에게 양보해야 하다니 창문을 열 때마다 마음에 걸린다.
레일 가격을 알아보니 설치비를 제외하고도 6만 원이 든다.
한 뼘에 6만 원이라니, 창문을 열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사생활을 지키기에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장 바꿔야 할 만큼 큰 문제는 아니지만, 결국 나는 레일을 교체했다.
레일 값 6만 원에 설치비 @를 지불하고 나서 드디어 온전히 가을바람을 차지했다.
양쪽 벽면으로 딱 붙여 고정시킨 커튼이 더는 나의 가을바람을 막을 수 없다.
창문을 열어도 커튼이 움직이지 않는다.
더 이상 커튼과 가을바람을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
딱 한 뼘만 연 창문 틈새로 상쾌한 가을바람이 우리 집 거실을 심폐소생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