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두 번 주말을 이용해 재래시장에 가곤 한다.
확실히 동네 마트보다 싸다.
시장에서만 살 수 있는 식재료를 사는 일,
남편과 둘이서 시장 입구 앞 떡볶이 집에서 요기를 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우리 집은 신도시 택지지구에 있기 때문에 가까운 재래시장이 없다.
아무리 가까워도 10km는 떨어져 있으니 사실 가성비로 치자면 그 값이 그 값이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는 한 달에 한두 번 이렇게 시장에 오는 것을 좋아한다.
시장에 가는 날이면 대개 시장에서 사 온 음식들로 점심을 먹곤 한다.
그러려면 오전 일찍 다녀와야 한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불맛 김’을 넉넉히 산다.
직접 불판에 한 장 한 장 구워서 파시는데 그 불맛이 김과 참 잘 어울린다.
먹기 좋게 일일이 다 잘라 포장해 주시는데,
냉동실에 넣어두고 한 팩씩 꺼내 식탁에 올리면 그날은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을 잘 먹는다.
시장에서 직접 만든 손두부는 또 얼마나 고소했는지.
따뜻한 두부에 양념간장 곁들이면 손쉽게 반찬 하나가 해결된다.
한 여름이 지나갔지만 낮에는 아직 덥기에 도토리묵 두 사발을 샀다.
시원한 육수를 부어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새콤달콤 참 맛있다.
음식에 감초처럼 필요한 청양 홍고추도 한 바구니 샀다.
된장찌개에 한 개씩 썰어 넣으면 색깔도 예쁘고 뒷맛은 개운해 정말 좋다.
수산물 가게에 들러 초밥 한 팩도 샀다.
광어, 연어, 생새우가 적당히 섞인 모둠 초밥은 우리 식구의 입맛대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과일 킬러’ 똥강아지들을 위한 과일도 산다.
“맛있는 걸로 골라 주세요.”라고 콧소리를 내면
제일 예쁘고 탐스러운 녀석들을 뽑아 봉지에 척척 담아 주신다.
양 손에 검은 봉지들이 하나 둘 늘어가면 가지고 온 에코백에 옮겨 어깨에 맨다.
에코백이 빵빵하게 부풀어 어깨에 안정감 있게 착 안착되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레이더 망 돌리듯 더 살 게 있나 연신 좌우로 고개를 돌리는데,
갑자기 신랑이 누군가에게 90도로 인사를 한다.
아버님 친구분이시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서 따로 식사를 한 적이 있어 나도 아는 친구분이다.
얼른 쫓아가 인사를 드렸다.
“여기 사나?”
“아닙니다. 회사 근처에 삽니다.”
“여기까지 왔나? 거기에 집은 산 거고?”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신랑이 웃으며 대답한다.
“아… 예.”
아버님 친구 이자 몇 해전 퇴직한 직장선배 이기도 한 과장님은
잠깐 사이 속사포 같이 지극히 사적인 질문들을 하시고는 쿨하게 돌아서 가셨다.
“휴~ 다행이다.”
신랑 팔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뭐가?”
“여기가 시장이어서 말이야. 시아버지 친구를 시장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백화점에서 만났으면 나 좀 난처했을 듯.” 내 대답에 신랑이 박장대소한다.
“뭐야. 백화점이면 어때?”
“기억 안 나? 우리 신혼 때 동기가 며느님이 ‘멋쟁이’ 예요. 한 마디 했다 아버님이 나 낭비벽 있을까 봐 걱정하셨다고 하신 거.”
지금이야 내가 얼마나 푼돈에 진심인지 아시는 아버님이지만
신혼 때는 그러셨다고 언젠가 식사자리에서 고백하신 적이 있다.
알뜰한 며느리로 인정받기까지 몇 번의 ‘심사’를 통과했을까?
감싸 안은 깍지를 풀며 신랑에게 다신 한번 힘주어 말한다.
“시장에서 만나 정말 다행이야. 안 그래?”
동의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표정의 웃음을 짓는 신랑과 왠지 뿌듯한 기분에 발걸음이 더 가벼워진 내가 나란히 차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