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글을 쓰지만 해석은 독자의 몫
첫 책을 출간하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책을 검색했다.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반응을 살피고 책 서평에 일일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두 번째 책은 그에 비하면 많이 덤덤하다. 생각날 때 한 번씩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반응을 보고 네이버 블로그 서평을 읽어본다. 댓글을 다는 대신 '좋아요' 버튼으로 마음을 전달한다.
저자의 댓글을 엄청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고 그로 인해 나와 활발히 소통하는 이도 생겼다. 내 책에 대한 자발적 서평을 나는 여전히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칭찬 일색이나 백만 번 공감한다는 독자의 평을 들으면 정말로 우쭐해지기도 한다.
두 번째 책 서평에 댓글을 남기지 않는 건 글쎄 딱히 이유는 없는데 고맙지 않아서는 아니다. 첫 번째 책과 결이 다른 내용이기도 하고 내 의도와 달리 해석한 서평에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게 선을 넘는 것 같을 뿐이다.
오늘 아침 검색창에 #마흔이 니체에 열광하는 이유 책 제목을 검색하니 며칠 전 쓴 서평이 눈에 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워킹맘인데 나는 이분의 글에는 몹시 댓글을 남기고 싶어졌다.
이분의 서평은 책 내용의 비판도 공감도 아니었다.
나와 자신의 비슷한 조건, 사십 대 중반, 워킹맘 등을 비교하며 내 글을 읽으니 더욱 자신이 작아진다는 내용이었다.
책에 나는 어떤 잘난 체도 하지 않았다고 자신한다. 오히려 나의 약점과 불안을 고스란히 담았다. 단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남은 중년의 삶이 기대될 뿐이다. 상황이 다르니 모두가 나와 같은 시선으로 미래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내가 댓글을 남기고 싶은 충동을 느낀 건 혹시 내 글로 인해 이 분이 조금 더 힘들어졌을까 봐였다.
저자 사인을 부탁받을 때 내가 빼놓지 않고 쓰는 문구가 있다.
당신의 고유함, 존재 자체로 빛나길 응원합니다...
독자의 상황을 일일이 알 수 없고 또 온전히 이해한다고도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각자의 고유함으로 살아가야 한다. 비교에서 오는 불안과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으로 나의 에너지를 소진하면 안 될 것이다.
그게 안타까웠는데 댓글도 공감도 비활성화시켜놓은 글이라 화면을 한참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힘 빠지는 사람한테 힘내라는 말은 응원이 아니라 가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힘내라는 말을 할 때 자주 머뭇거리게 된다. 힘이 안 날 수도 있으니까. 힘을 내고 싶지 않을 수도, 낼 수 없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이 분에게 어떤 말을 전했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