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서류/면접 광탈을 겪고, 결국엔 인턴 했던 패션 회사의 전환 면접날이 오고야 말았다.어찌나 긴장되던지 수능날 이후로 처음으로 손을 덜덜 떨었다.
긴장한 채로 문 열고 들어간 면접장에는 너무나도 낯익은 얼굴이 있었는데- 누군가 했더니, 아뿔싸. 인턴 시절 내가 근무했던 우리 부서 팀장님이다.일순간 나의 2달 인턴생활매일매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떠오르는 큰 실수는 없었지만, 딱히 말할만한 성과도 없어 괜스레불안했다.
들어서자마자 인사하고 준비한 PT 발표를 하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그런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면접관이 되려 '물 좀 마시고, 긴장하지 마라' 했다. 정말 살면서 제일 많이 떨었던 순간이 아닌가 싶다.
PT 후 이어진 질문에, 어찌 됐던 난 어김없이 대책 없는 무한 긍정의 힘으로 대답해댔다.
"지금 입고 온 옷은 어느 브랜드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A브랜드(경쟁회사 꺼)입니다!"
... 새삼스레쟤 또라이 맞네 했을 거다.
패션회사 면접 보러 오는 지원자가 당당히 경쟁사 옷을 입고 간 꼴이라니.삼성 지원하러 가는데, '전 애플이 좋아요' 하는 거나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내가 삽질하고 있는 와중에도 당시 팀장님은 면접이 끝날 때까지 나에게 단 하나의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근데 팀장님은 질문 없으세요? 이미 다 아셔서 그런가?" 하는 한 면접관의 물음에,
팀장님曰 "응, 난 다 알지~"하시는데.
팀장님은 웃었지만, 난 그 말이 더 무서웠다.
그럼 내 불합격은 이미 기정사실이라는 건가?
면접 후, 난 정말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인턴생활 중 팀장님이 날 좋게 볼만한 계기나 접점이 전혀 없었다. 외부 약속으로 자리에 안 계신 때가 많아, 거의 얼굴만 몇 번 봤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회사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라 생각하고, 난 휴학을 준비했다. 그렇게 학과에 휴학서를 내러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결과는 합격.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합격자 발표를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선 말 그대로 펄쩍펄쩍 뛰며, 얼마나 환호성을 질러댔는지.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드디어 취업했다!' 하는 생각보다는, 계속 탈락하면서 불안해했던 나 스스로를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 참 감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운명인 건지 재수 옴 붙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난 6년째 그 회사를 다니고 있다.
가끔은 후회되고, 울고불고 지친 날도 많았지만
일단은, 현재 진행 중.
지난주 수요일. 인턴전환 면접 보고 왔는데 커피 한잔 하자며, 반가운 J 씨의 연락이 왔다.(J는 지난여름 우리 팀에서 근무했던 인턴이다) 만나자마자 면접완전 망쳤다며, 우는 소리를 하길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뿔싸! J 가 면접 볼 때 우리 팀장님이 면접관으로 들어왔단다. 나와 같은 경우였다.
그리고 팀장님은 자기한테 질문을 딱 하나 했단다. 인턴 월급 받아서 어디 썼냐고.
또, 좋아하는 브랜드가 뭐냐 묻는데, 거기다 대고 본인도 모르게 B브랜드를 말했단다. 참고로 B브랜드는 우리 회사의 가장 큰 경쟁 브랜드 중 하나.그러면서 자기는 망했단다 이제.
그런 J 씨에게 난 코웃음을 쳐줬다.
저기요, 아무것도 모르고 타사 브랜드 당당히 입고 간 사람도 있어요. 심지어 난 당시 팀장님이 질문을 단 한 개도 하지 않으셨다고- 티는 안 냈지만 얼마나 쫄렸는데.
하지만 그런 무지한 사람도 합격해서 이렇게 선배랍시고 앞에 앉아서 선배 노릇하고 있으니 걱정 마라. 네 실수는 실수 축에도 못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