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잘 해냈는데, 흔들리기 시작했다.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소모하던 방식에 대하여

by LeadrsEden

입사한 지 시간이 조금 지났다.
조직의 분위기가 읽히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말버릇과 회의의 결도 익숙해졌다.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초보 팀장이 아니라
중견기업에서 HR 실무를 담당하며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팀을 직접 이끄는 리더는 아니지만,
팀이 흔들릴 때마다 불려 나오는 사람.


결정은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데
책임은 아래로 흘러내리는 자리.




회의가 시작되면
팀장은 말을 꺼내기 전부터
한숨이 먼저 나왔다.


회의는 방향을 정하기보다
상황을 나열하는 시간이 되었고,
“시간이 없다”는 말이
모든 설명을 대신했다.


지시는 있었지만
구조는 없었고,
개선은 늘 팀원들의 몫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예민해졌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신경을 세워 행동했고,


갈등의 기미가 보이면
자연스럽게 그 중간으로 들어갔다.


누군가는 조정해야 했고,
그 역할은
어느 순간부터 당연히
내 몫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이걸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팀이 돌아가야 했고,
일은 멈출 수 없었고,
누군가는 정리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팀원들의 일을 조금 더 가져왔고,
팀장이 정리하지 않은 구조를
임시로 대신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방식은
점점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진짜 힘들었던 건
성장하지 않는 대화,
반복되는 핑계,
구조화되지 않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나도
저 모습과 닮아가는 건 아닐까.




주말이 되자
몸은 쉬고 있었지만
머리는 멈추지 않았다.


무능력해 보이는 팀장,
그 팀장을 닮아가고 있는 나,
그래도 회사를 떠나지 않은 팀원들,
나에게서 더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남았다고 말하던 직원.


머릿속은
전시 상황처럼 돌아갔다.


가슴이 답답했고,
이유 없이 지쳐 있었다.




그때 문득
이 질문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회피하거나,
냉소하거나,
불평으로 버티는데


나는 왜 늘
나를 먼저 탓할까.




생각은
자연스럽게 과거로 흘러갔다.
어릴 때 나는 장남이었다.


부모님의 갈등 속에서
집안의 공기는 늘 팽팽했다.
큰 소리는 없었지만
나는 항상 상황을 읽고 있었다.


말을 아끼고,
눈치를 보고,
문제가 더 커지지 않게
스스로를 조절했다.




아무도 나에게
책임지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떠안아야 한다는 걸.


그래서 나는
조정자가 되었다.


그게
열한 살의 내가 선택한
생존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 말만큼은
지금의 나에게
분명히 해주고 싶다.


그때는,
열한 살의 네가 떠안아 줘서
내가 살 수 있었다.


이건 미화가 아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더 이상
그때의 아이가 아니고,
이 조직도
그때의 집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여전히 먼저 반응한다.


책임의 공백이 보이면
앞으로 나서고,
문제가 생기면
나부터 돌아본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질문은 하나로 정리되었다.


이 방식은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는가.


아직 답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지금의 방식이 나에게 맞지 않는 신호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차린 상태라는 것.




이제 어떤 것부터 건드려야 할지는
분명해졌다.

구조를 먼저 바꿀 것인지,
팀장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할 것인지,
아니면 팀원과의 역할을 재정의할 것인지.

무엇을 선택하든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