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커 Sep 22. 2023

왜, 피렌체, 이탈리아죠?

뒤로 걷는 오페라 #2

  이탈리아 피렌체.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와 두오모(Duomo), 그 옛날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성당을 품은 도시. 풍요롭고 아름다운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 에트루리아 문명으로부터, 고대 로마를 거쳐 중세기에는 로마와 프랑스를 오가는 순례자들 덕분에 교회와 숙박 시설을 중심으로 부를 쌓아 나간 토스카나 지역에서도 수장의 역할을 맡았던 도시입니다. 무역과 금융업으로 축적된 경제적, 문화적 역량은 결국 ‘르네상스’라는 세계사에서 가장 찬란한 창조적 도약을 낳았지요.


  축적된 거대한 부와 도시의 에너지에 만족하지 않고, 중세의 암흑기를 걷어낼 예술과 인문학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골몰했다는 점은, 피렌체를 되돌아볼 때 언제나 새롭게 놀라는 점입니다. 학문과 문화예술에 대한 거대하고 적극적인 후원 덕분에 당대 유럽의 수많은 천재들이 온화한 지중해를 배경으로 새로운 가능성의 도시 공화국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의 중심에 메디치 가문이 존재합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로렌초 데 메디치의 모습

                                                                                   

  지중해의 온화한 풍광과 토스카나의 풍요로운 들녘, 로마와 유럽을 연결하는 지정학적인 위치를 십분 활용하며 성장한 피렌체의 상인들은, 피렌체의 부와 권력을 장악한 메디치 가문의 은행을 중심으로 공화국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메디치 은행은 도시의 생명줄을 쥐고, 활기를 창조하는 동력, 그 자체였습니다.


  가문의 계승자들이 온갖 폭력과 비극적인 악행으로 도시의 부와 권력을 사실상 통치하는 피의 역사를 써나갈 때조차 학문, 예술과 문화에 대한 후원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대 유럽의 철학자들, 예술가들, 과학자들을 끌어들여 도시 전체를 인문주의의 장으로 만들어 나가면서,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가득한 도시는 인문학적 융합과 새로운 예술의 과실이 익어갈 인적 네트워크로 융합의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가장 위대한 리더로 불리는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Medici)가 1492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이 거대한 후원자의 발자취는 르네상스의 절정을 일구어냅니다. 오페라는 바로 그 천재들의 인적 네트워크 속에서, 그 축적된 문화적 기풍 속에서, 그 융합적 사고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하게 됩니다.


  ‘오페라’라는 말의 어원 자체가 ‘작품’, ‘프로젝트’, ‘노동’의 의미를 담고 있듯, 오페라는 하나의 무대를 완성하기 위해 철학자, 작곡가, 시인, 미술가, 건축가, 음악가가 함께 모여 만드는 종합예술 프로젝트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쥴리아노 데 메디치의 두상, 틴토레토, 1540년대


  16세기 말엽, 피렌체의 카메라타(Florentine Camerata).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이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철학자, 과학자, 시인, 예술가들이었죠. 널리 인문학적 교양을 갖춘 지식인을 숭상하던 르네상스의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모임은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카메라타에 모인 사람들은 중세교회 음악이 꽃피운 단선율에서 다성부 음악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당대의 음악적인 변화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지요. 음악이 복잡해질수록 언어가 묻히고, 시적인 메시지들이 들리지 않게 되는 현상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말을 노래의 선율로 자연스럽게 옮길 수만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었지요. 배우가 언어적 텍스트를 살리면서 자연스럽게 노래하며, 리라 등의 악기로 반주하는 형태의 모노디(Monodie)는 대위법적으로 짜인 다성부 악곡의 제한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해법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카메라타에 모인 예술애호가들의 무엇보다 본질적인 의도는 ‘그리스의 비극’, 그 정제된 종합예술을 오늘의 무대로 되살려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최초의 오페라 양식, 오페라 세리아가 탄생하게 되는 지점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정제된 예술 형태로 되돌아가 지극히 이상적인 인간의 원형을 발견하려는 시도, 바로 이것이 오페라 세리아를 세상에 등장시킨 지향점이었습니다. 탄생과 거의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새로운 형식의 무대로 보여주는 오페라 무대는 이탈리아 전역을 열광으로 몰고 갑니다.


우측으로 고개를 숙인 성모 두상, 레오나르도 다빈치, 1510-1513


이전 01화 오페라, 젠더의 이름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