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피렌체, 지중해의 태양, 토스카나의 부드러운 바람에 흔들리는 사이프러스의 잎새 위로 르네상스의 큰 이상이 날개를 편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진실의 극히 작은 일부분일지도 모릅니다. 종교라는 이름의 엄혹함이 짓누르던 시대, 인문학과 예술의 훈풍이 세계를 조금은 더 살만한 것으로 만들었는지 확신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아직 오지 않은 이상적 세계관을 향한 치열한 경주는 적어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허가된 일부분의 사람들에게 국한된 권리였다는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이번 장에서는 오페라 세리아에 얽힌 젠더 이야기, 16세기와 17세기의 오페라 무대 뒤에 숨겨진 비극과 그 비극을 만든 배경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오르페우스, 오디옹 레동, 1903-1910
최초의 오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습니다. 자코포 페리(Jacopo Peri, 1561-1633)가 작곡해 1597년 무대에 올린 ‘다프네(Dafne)’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악보가 전해지지 않고, 1607년 상연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의 오르페오를 시초로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어느 쪽을 최초의 오페라로 보든지 1600년을 전후로 오페라의 형식이 무대로 올릴 정도로 정리된 것은 분명하고, 그 이야기의 소재가 신화 속 인물, 신적 존재의 영웅적 서사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폴로에게 쫓기는 다프네, 지오바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1744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속 영웅을 노래하며, 음악 속에서 언어를 재발견하고 정제된 예술의 완성형을 구축하려는 노력은 ‘오페라 세리아’, 정가극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오페라는 그저 클래식의 한 장르로 여겨질 뿐이지만, 음악사를 돌이켜볼 때 오페라의 탄생과 인기가 엔진이 되어 다채로운 양식의 기악 장르를 성장시키며 바로크 음악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 존재의 의미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섭니다.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의 탄생 이후, 18세기 오페라 부파(Opera Buffa)의 성장, 19세기 사실주의 오페라(Verismo)로 이어지는 오페라의 역사는 당대 유럽의 사회문화적 흐름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지요. 그러므로 문명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는 장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페라 세리아의 시대는 르네상스맨들의 열정적인 창조력이 선도해 간 시대임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종교의 귄위와 관성이 지배하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봉건적 사회 질서는 아직 완전히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기독교적 세계관과 역사관은, 당대의 ‘젠더’를 창세기에 담긴 ‘아담과 이브’의 신화에 머물게 했지요. 모든 여성은 ‘이브’의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교회와 세속의 봉건 체제는 모두 여성에게 지극히 ‘체계적으로’ 폭력적이었죠. 교회법에서 여성은, 인류를 악마에게로 이끈 이브의 원죄를 짊어진 자로서, 엄격하게 그 권리를 제한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아담과 이브, 알브레히트 뒤러, 1507
돌이켜 보면 예수가 최초 설법한 가르침과는 상당히 멀어진 가치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성을 직접 제자로 받아들이고, 부정한 여성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로 설법한 예수의 보편 사상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차별적인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애초, 여성을 원죄를 불러일으킨 존재로 부각한 사도 바울의 사상이 초기 교부철학자들에게 이어지며 교회법으로 형성(形性)된 것이라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엄격한 신분제가 유지된 봉건체계 속에서, 여성의 신분과 권리는 분명 신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귀족 여성의 삶이 농노 여성의 삶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귀족 가문의 여성 역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죠. 공직에 나가거나, 사회적인 권위를 가진 직업을 영위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가문과의 결혼 이외에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이브의 원죄를 설파하는 교회 안에서 여성의 권리는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여성은 설사 수녀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더라도 예배를 집전하거나, 설교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성가를 부르며 신을 찬양하는 것도 남성들의 일이었습니다. 여성의 높은 음역대는 아직 성징을 겪지 않은 남자 어린이들이 소화했습니다. 기괴한 일입니다. 오늘날 남성 어린이들로 구성된 합창단의 아름다운 노래가 여성을 배제한 교회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은 기묘하기까지 합니다.
한 걸음 더 나가, 아름다운 소프라니스트의 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카스트라토(Castrato)’가 되기를 선택하는 이들이 나타납니다. 사춘기, 제2차 성징의 시기가 오기 전에 물리적인 거세를 통해 성징을 막는 방법이 동원됩니다. 변성기를 건너뛰어, 소프라노의 음역을 소화할 수 있는 목소리로 남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카스트라토’는 화려한 기교로 넘치는 벨칸토 창법으로 오페라 세리아를 이탈리아 전역, 더 나가 유럽 전역에서 사랑받는 공연으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노래가 이끌어가는 ‘오페라’라는 장르가 널리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서 더 많은 ‘카스트라토’가 필요해집니다. 역설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성을 배제한 그 시스템이 남성의 비극을 불러온 슬픈 사례가 아닐 수 없지요. 스스로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근원적인 불행뿐 아니라, 시술의 온갖 부작용, 시술 후에도 온전히 유지되지 못하는 목소리는 수많은 카스트라토의 삶을 황폐하게 망가뜨립니다. 대부분은 시술 후에도 오페라 가수로서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파리넬리의 초상, 자코포 아미가니
카스트라토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갔던 실존 인물 ‘파리넬리’의 삶을 우리는 영화를 통해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영화 속 헨델의 오페라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콜로라투라의 기교로 가득한 카덴차로 영화 속 관객과 영화 밖의 우리들, 모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지만, 그 화려한 노래 속에 깃든 쓸쓸함과 고독, 패이소스는 당대의 사회적 억압과 폭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교회와 봉건 사회가 남긴 여성에 대한 근거 없는 신화는 오늘날 모두 사라졌을까요? 2023년, 세계 시민으로서의 인권과 민주주의 공화국의 국가 시스템이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 시대. 우리 사회의 젠더는 중세의 몽매로부터 충분히 벗어나 있을까요. 성별로 인해 무언가로부터 배제되는 사회적 관성은 사라졌을까요. 질문은 아직 사라지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