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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 Sep 26. 2023

뛰는 놈 위의 나는 놈,  인간 군상의 코미디

뒤로 걷는 오페라 #6 오페라 쟌니 스키키

  libri titulus est ... comedia vero incohat asperitatem alicuius rei, sed eius materia prospere terminatur

  희극은 추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지만 그 이야기의 끝은 즐겁게 마무리된다.      

  

  오페라 ‘쟌니 스키키’의 이야기가 시작된 원전, ‘신곡’을 집필한 단테의 ‘희극’에 대한 생각입니다. 오페라 부파의 본령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온갖 인간 군상들의 크고 작은 소동은 극히 속물적인 이기심과 욕망으로 가득 차 비극에 가깝지만, 그 소동의 엉뚱함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웃음은 설사 그것이 허탈하고 냉소적인 웃음일지라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킵니다. 오페라 부파의 다채로운 음악적 장치들은 소동의 즐거움을 음악만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로 배가시키지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지옥의 마지막 써클에 내려놓는 안테우스, 윌리엄 블레이크, 1824


  오페라 쟌니 스키키는 원전의 정신이 구현하고 있는 대로 욕망 덩어리 귀족들을 타고난 재치와 사기성으로 농락하는 니 스키키의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코믹 오페라, 오페라 부파(Opera Buffa)라고 할 수 있죠. 이번 장에서는 오페라 쟌니 스키키에 얽힌 이야기들과 당대의 젠더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베르디와 푸치니를 지극히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관객들임에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오페라지만, 오페라 속 라울레타의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no Caro)’만은 전 세계 수많은 소프라노가 공연을 통해 별도의 가곡처럼 선보이고 있는지라 누구나 들으면 ‘아, 이 곡’할 만큼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영원의 지옥불, 인페르노(Inferno)     


  La Divina Commedia. ‘신곡(新曲)’으로 불리는 3부작 서사시. 여행자 단테가 안내자들을 따라 천국과 연옥, 지옥을 여행하는 이야기입니다. 1265년에 태어난 피렌체 사람, 저자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가 스스로 화자가 되어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베르나르두스 등 3인의 안내를 받으며 신이 창조한 놀라운 세계를 여행합니다. 지옥과 연옥, 천국에서 만난 신화 속의 인물, 실존 인물들의 행실을 소개하여, 중세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한 세계관과 죄악과 구원에 대한 숙고가 담겨있습니다.          


인페르노 속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한스 마카르트,  19C

    

  오페라 쟌니 스키키는 신곡 중 지옥(인페르노, Inferno) 편 30곡, 28행부터 45행에 담긴 이야기를 토대로 합니다. 오페라의 기둥 줄거리가 이 짧은 이야기 속에 담겨 있죠.      

 

  “피렌체의 거부 ‘부오조’가 죽은 뒤, 부오조의 딸 시몬네는 변장과 목소리 위조의 달인 쟌니 스키키를 아버지처럼 꾸미게 하여 거짓 유언으로 이익을 취한다. 쟌니 스키키는 그 대가로 토스카나에서 가장 좋은 말을 얻었다. 그는 이후 미쳐버린 채, 망자가 되었는데 위장, 변장, 변조로 거짓을 연출한 자다.”     


  쟌니 스키키가 당대의 실존 인물로 실제로도 목소리를 속이거나 변장에 능한 사람으로 유명했던 것이 흥미롭습니다. 지옥편에서도 포악한 행동들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재치 있는 농부로 묘사될만한 인물은 아닌 듯합니다.     


쟌니 스키키 초연 무대 중 상속 장면, 1918

    

  라울레타의 애끓는 아리아     

  

  쟌니 스키키의 딸 라울레타는 부오조의 일족인 리누치오를 사랑합니다. 죽음 앞에 선 부오조의 거대한 부가 수도원으로 상속될 예정임을 알게 된 일족이 각자의 욕망을 위해 유언장을 찾아 헤맬 때 마침 리누치오가 유언장을 발견합니다. 리누치오는 평범한 가문의 라울레타와 결혼하기 위해 유언장을 빌미로 삼촌 치타에게 허락을 구합니다. 그리고 재치 넘치는 농부 쟌니 스키키를 불러 상속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하죠. 쟌니 스키키와 라울레타를 만난 치타는 지참금 없이는 결혼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화가 난 쟌니 스키키는 라울레타에게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바로 이때 라울레타가 아버지에게 결혼을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노래가 바로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no Caro)입니다. 가사를 한번 음미해 볼까요?                    


초연 당시 라울레타 역을 맡은 플로렌스 이스튼, 1918


LAURETTA(in ginocchio, dinanzi a Gianni)    

O mio babbino caro,

mi piace è bello,bello;

vo'andare in Porta Rossa

a comperar l'anello!

Sì, sì, ci voglio andare!

e sel'amassi indarno,

andrei sul Ponte Vecchio,

ma per buttarmi in Arno!

Mi struggo emi tormento!

O Dio, vorrei morir!...

Babbo, pietà, pietà!......

Babbo, pietà, pietà!...


라우레따(쟌니 스키키 앞에 무릎을 꿇고)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전 아름다운 이를 사랑해요, 아름다운 사람;

롯사 문으로 가서

반지를 사겠어요!

그래요, 그래요, 가고 싶어요!

만일 그에 대한 사랑이 헛된 것이라면,

베키오 다리로 가서

아르노 강물에 몸을 던져 버리겠어요!

전 사랑의 고통에 빠져 있어요!

오, 맙소사, 죽고 싶어요!...

아빠,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아빠,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결혼, 지참금, 선택할 수 없는 현실    


  애달프고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 있자면, 문득 신에게 구원을 구하는 성스러움마저 느껴지지만, 그 가사는 아버지에게 어떻게든 결혼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한 여성의 녹록하지 않은 삶의 조건이 녹아 있습니다. 지참금이 얽혀 있는 상황을 생각할 때, 결혼하지 못하면 죽겠다는 아리아 속 다짐은 사랑의 로맨틱한 정서보다는, 결혼하지 못하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독립해서 살아갈 방도가 없는 당대 여성의 삶의 풍경을 더욱 절절히 느끼게 합니다.


  넉넉한 지참금이 있어야만 여성이 결혼을 통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결국 돈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이 안정적인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의 관습을 읽게도 됩니다. 종교의 권위가 세상을 지배한 중세기,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까요? 다음 장에서는 중세기 여성의 삶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신곡에 관해 명상하는 단테, 장 자크 퓌세레,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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