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전체 이야기의 1막에 해당하는 오페라 개관도 마지막 장이 되었네요. 2막에서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오페라와 아리아를 살펴보고 당대의 젠더와 관련된 사회상과 문화적 흐름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18세기를 지나며 자리 잡은 오페라 부파의 새로운 사회 체계에 대한 희망과 그 안의 부조리를 함께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장에서는 19세기부터 시작된 사실주의 오페라(Verismo)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오페라 부파(Opera Buffa)의 즐거운 냉소주의 시대를 지나, 문학과 미술에서의 자연주의, 사실주의를 흡수하며오페라는 음악적으로도.소재와 스토리 측면에서도 큰 변화의 시기를 겪게 됩니다. 19세기 후반까지 이어진 낭만주의의 흐름에 대한 반동이 다양한 장르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오페라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낭만주의의 터질 것 같은 열정의 시대가 흘러가고 작가들은 대본을 통해 당대의 시대상을 사진처럼 묘사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유럽의 19세기. 상업이 발달하고 산업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삶의 터전을 농촌에서 도시로 옮긴 이들은 ‘도시 빈민’으로 편입되며 인생의 어두운 단면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민중의 삶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근대를 맞이하며 큰 변화를 겪지만, 산업화로 돌입한 사회는 빈민에 편입된 사람들의 고난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삶은 여전히 비참했습니다. 오히려 생경한 도시에서의 삶은 예기치 못한 고난으로 가득했죠.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온갖 사회문제가 등장하고, 범죄와 질병은 많은 이들을 괴롭혔습니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탄호이저, 페르디난트 리
바로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 사실주의오페라(Verismo)입니다. 사실주의 오페라는 사회 고발성 소재를 자주 다룹니다. 지난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을 자연주의의 시각으로 냉철하게 묘사하며 이러한 삶의 양상이 옳은 것인지 관객에게 되묻습니다. 오페라 무대에 드라마틱한 범죄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피를 부르는 살인과 폭력이 묘사됩니다. 사회적인 이슈들이 오페라의 소재로 받아들여집니다.
작곡가 푸치니가 이 시기에 등장해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낭만주의 오페라를 이끈 베르디에 이어 이탈리아 오페라의 찬란한 역사를 이어간 ‘푸치니’의 시절입니다. 어찌 보면 이때가 오페라의 진정한 전성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주의 오페라의 시기에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은 변화했을까요? 사회 고발성 소재들이 자주 무대에 등장하지만, 성별에 따른 차별은 여전히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습니다. 여성 캐릭터들은 자주 ‘팜므파탈’과 ‘천사/어머니’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사회적 멸시의 대상이자 사회와 관계의 부조리 속에서 희생당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오페라 텍스트를 쓴 작가나 작곡가들이 여성 비하적인 시각만을 보여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거의 대부분 남성이었던 까닭에 성차별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단언하는 것은 현상을 너무 피상적으로 보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오페라 제작과 관련된 제작자, 작가, 작곡가, 주요 스텝 등 남성 중심의 전문가 집단, 그들의 일상 속에서 벌어진 권위에 의한 복종과 폭력이 '여성'을 배제하고 소외시켜 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사회 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베리스모가 제기하고 있는 현상들은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궁극적으로 그 비참함으로 인해 사회는 오로지 쓸모없으며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오페라 메살리나, 툴로즈 로트렉, 1900-1901
베리스모 오페라가 도래하기 직전,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속의 비올레타는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위치에 있지만 동시에 그 불운을 야기한 사회적 부조리의 희생양으로 그려집니다. 누군가는 결과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묻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그가 처한 불행에 공감하는 시각을 텍스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세기에도 유럽은 여성이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더라도 가문이 몰락하여 갈 곳이 없어지면 세상의 풍파를 이기고 독립적으로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비올레타도 그러한 삶의 조건을 거절하지 못한 채, 자신의 선택(실은 주어진)으로 야기된 현실에 대한 비탄과 슬픔을 내비치지도 못하고 적응한 인물이지요. ‘라트라비아타’의 원작자와 작곡자 모두가 소위 ‘코르티잔’으로 불리던 여성과의 관계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네들의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고통에 공감했던 것을 돌이켜 보면, 사실주의 오페라에 전시된 여성들의 삶은 현실 속에서의 지난한 삶이 있는 그대로 투영된 것에 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그러한 고통의 전시 자체가 새로운 편견과 고정관념을 양태하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더 많은 사례에서, 여성의 존재와 삶은 그저 욕망의 대상으로서, 욕망 자체를 불러일으키는 데 소비되었습니다. 사회적 현실이 무대를 통해 오히려촉진되고 더욱 강력한 편견을 창출하는 과정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직은 코믹 오페라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최초의 사실적인 오페라로 불리는 ‘카르멘’에서 타이틀 롤, 세비야의 집시 카르멘은 ‘팜므파탈’의 대명사가 되어 영원히 유혹하는 존재로 남았습니다. 유혹하는 존재라는 이유로 남성의 칼날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여성은 도시에서 살해되고, 오페라 무대 위에서 다시 살해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카르멘은 이국적인 ‘집시 여성’에 대한 유럽 남성들의 취향을 드러내며, 문화적인 편견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오페라 마스크 볼, 마네, 1873
베리스모 오페라 시대를 빛낸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어떨까요? 나비부인 역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과 여성을 거침없이 대상화한 작품이지요. 나가사키에 주둔한 미군의 집으로 사실상 팔려간 초초상은 군인의 아이를 낳고 그가 진정한 남편이라고 믿으며 끝없이 기다리다 결국 무거운 현실 앞에서 죽음을 선택합니다. 부인과 다시 나가사키로 돌아왔지만 집으로 오지 않는 남편을 밤새 기다리는 장면에서 그 유명한 ‘허밍 코러스’가 울려 퍼지죠.
대부분의 오페라 무대에서 ‘허밍 코러스의 장면’은 일본 가옥의 정제된 아름다움을 연출하며 고즈넉하고 숭고하고 아름답게 죽음을 그립니다. 과연 숭고한 죽음, 아름다운 죽음일까요? 거친 사회적 폭력에 의해 유도된 죽음은 아닐까요? 오페라 ‘나비부인’은 베리스모의 시대에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여전히 카타르시스를 위한 소모적 장치로서 활용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아름다움으로 포장한 비극적 현실의 미화 앞에 베리스모의 이상은 차라리 초라해 보입니다.
20세기 이후의 오페라는 형식과 내용에서 더욱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며 장르의 새로운 길을 탐색했습니다. 연극으로부터 파생된 뮤지컬과 합종연횡하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래식 자체가 이제는 마이너한 장르가 되어버린 까닭에 무대는 더욱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그럼에도 가사로서 서정적인 심상을 전달하는 아리아의 힘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현실의 부조리가 무대로 옮겨지고, 무대가 다시 현실을 왜곡하는 현상을 넘어, 오페라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널리 퍼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