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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Sep 15. 2023

29. 내 옆에 사람이 소리 없이 사라진다.  

기다려야 하나, 그냥 가야 하나 늘 어렵다.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서'이다. 학교 근무의 특성상, 직장인에게 부여되는 '1시간의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점심시간에도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학교'라는 특성 때문이다. 


대신 4시간 근무 시 30분의 휴게시간이 주어진다. 그 휴게시간에 점심을 먹고 복도를 돌면서 근육을 풀고 소화를 시킨다. 




내가 근무 중인 학교는 ㅁ자 형태로 되어 있는 건물이어서 한 바퀴를 도는데 무려(?) 3분이나 걸린다. 한 층을 걷는데 3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게 짧지는 않은 시간이다. 그렇게 약 15분 정도를 돌면 휴게시간 30분이 딱 채워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식사 후 아직 수업이 한창인 조용한 2층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마침 식사를 마치고 올라온 종일반 선생님과 우연히 마주쳐 함께 걷게 되었다. 


얼마 전 강아지가 보청기를 잘근잘근 씹어대서 보청기 없이 와우만 착용하고 있는 상태라서 인공와우를 착용한 오른편에 선생님이 오도록 자리 배치를 하고 함께 걷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복도를 빙빙 돌고 있으니 특별실 활동을 마치고 본 교실로 이동하는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 우리가 지나갈 때 아이들이 우르르 이동하면서 인공와우로 들어오는 많은 소리들이 '짬뽕'이 되었다. 무리가 지나갈 수 있게 자리를 피해 주고 뒤를 돌아보니 종일반 선생님이 안 계신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내 뒤에 있는 화장실을 보니, 아마도 '선생님~ 저 화장실 갔다 갈게요~!'라고 내 뒤에서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종일반 선생님의 작고 보드라운 음성이 완전히 묻혀버렸던 모양이다. 


고민이 되었다.


기다려야 하나? 어차피 12시가 다 되었으니 그냥 도서관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 

망설이다가 그냥 도서관으로 와버렸다. 사무실에 앉아서 생각했다. '혹시 종일반 선생님이 들어와서 왜 그냥 가셨냐고 물으면 어떡하지?' 이런 난감한 상황들이 싫어서 늘 상황을 예상하곤 한다. '그럼 날 찾는 전화가 와서 도서관에 달려왔다고 해야겠다!'라는 완벽한 핑계를 생각해내고 나니 왜인지 난감한 상황에 대한 부담이 없어졌다. 


물론, 종일반 선생님은 다시 날 찾으러 도서관으로 오시진 않았지만  불편한 이 상황을 오랜만에 겪으니 듣지 못함에 대한 자존감 바닥이 다시 눈앞에 아른거린다. 


가끔 듣질 못 하니 예상 밖의 행동을 하는 경우들이 종종 보다는 많고 굉장히 보다는 적은 수로 일어난다. 그런 뜬금없는 행동들에 내 장애를 아는 분들도 당황스러워하거나 멋쩍어하는 상황들을 여러 번 겪었음에도 절대 내성이 생기지도, 면역이 생기지도 않는다. 


역시, 복도는 혼자 도는게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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