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연애를 오픈하고 매번 늦은 시간까지 보란 듯이 통화하는 아이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치뤘다. 초등 시절처럼 눈에서 레이저를 쏠 수가 없다는 것은 중학생을 키우는 부모님들이라면 공감할 내용.
인공와우를 하기 전이라면 방 문을 열고 있어도 통화하는 소리가 안 들렸을텐데, 지금은 문을 닫아도 방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이야기인지 분별은 안되지만.
평일에는 10시 30분이 넘으면 친구들과 통화 금지인데, 사춘기 딸에게는 10시 30분이 아직은 초 저녁인 듯 하다. 서로 약속 지키자며 웃음과 경고가 오가던 어느 날, 화내지 않고 전화를 끊게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음치인 내가 방에 들어가서 MZ세대는 알지도 못할 90년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97년도에 나온 ‘박상민 – 무기여 잘 있거라’ 혹시 아시는지?
딱 지금의 딸 나이때 작은아빠랑 함께 갔던 노래방에서 작은아빠가 부르는 걸 보고는 가사가 너무 재미있어서 외운 것이 지금도 잊히지 않고 기억나는 노래 중에 하나다.
주인공인 여자가 다섯 번째 이별을 하고 산 속으로 떠났다는 내용인데 한창 핑크빛인 커플에게는 전혀 어울리는 노래가 아니지만, 어쩌나, 아는 노래라곤 이것뿐인 것을.
10시 30분이 되면 들어가서 첫 번째 남자 부분을 불러주고 나온다. 그런데도 통화가 마무리가 안되면 다시 들어가 두 번째 남자 부분을 불러준다. 그 뒤로는 10시 30분에 똑똑! 노크를 하면 바로 통화를 마무리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직 다섯 번째 남자 이야기를 못 불러준 것이 내심 아쉽다.
인공와우 수술을 하고 기계를 부착하면 언어치료와 함께 음악재활이 패키지로 진행 된다. (물론 선택사항이긴 한데 기계로 듣는게 처음이라 추천하는 재활치료는 다 패키지로 결재를 했었다.)
처음 음악 재활치료에서는 악기 소리 구분하는 훈련을 하였다. 이것이 피아노 소리인지, 첼로 소리인지, 플루트 소리인지. 피아노와 북소리는 구분이 가능한데, 피아노와 줄 악기 소리는 구분이 힘들었다. 줄이 떨리는 소리를 느껴 보라는데 아무리 집중을 해도 그 차이를 캐치하기가 힘들었다.
어떤 날에는 피아노 건반을 치면서 소리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맞추는 훈련을 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도레미’ 하는 것이 들렸겠지만, 이제 막 기계를 착용한 나에게는 도대체 이게 커지는 소리인지 작아지는 소리인지도 분간하는 것이 힘들었다.
결국 재활은 정해진 횟수만 진행을 하고 더 이상의 음악 재활은 하지 않았다.
와우를 하고 새로 익히거나 마음에 드는 노래를 찾지 못 했다. 와우로 듣는 대부분의 노래들은 음색의 풍부함을 느끼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니 음악에 취미를 잃었다.
악기소리에 가수의 목소리가 묻히면 더욱더 노래를 듣는 것이 힘들어 가끔 노래가 듣고 싶을때는 맨 귀로 들었던 90년대 2000년대 노래들을 찾아 듣거나, 가사 없이 선율만 느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듣는다.
물론 피아노 클래식과 첼로 클래식의 차이를 구분하지는 못 한다.
이렇게 음악과 가깝지 않은 내가 딸 아이의 방에서 맨 목으로 노래를 부를 줄이야!
이왕이면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줘볼까 싶어, 좋아하는 노래 3개를 물어봤다.
내가 모르는 가수, 처음 들어보는 제목.
세 곡이 모두 빠르고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외우기는 틀린 것 같다.
아이보다 먼저 잠들기 전, 가끔씩 문자를 보낸다. 불러줄 노래를 선곡하면서.
첫사랑이자 짝사랑인 첫째는 밑에 두 동생들과 다르게 엄마의 듣지 못함으로 인해 많은 피로와 서운함을 느끼고 자랐다.
내가 조금씩 잘 들을 수 있는게 많아질수록 듣지 못해 슬프고 아팠던 기억들이 서서히 잊혀져 간 것 같다. 내가 그런 것처럼 나의 첫째 딸도 그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