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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Dec 28. 2023

32.내가 청각장애인을 만날 확률은?


전국에 청각 장애 등록이 된 수는 411,749명, 이 중 인천은 25,128명.

(2021년 12월말 기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 참고)  

   

인천 인구수: 2,964,820명

(2022년 12월 부동산 지인 참고)  


  



인천의 인구수 대비 약 1%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청각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다.      

내가 장애인 판정을 받고 실생활에서는 의도하지 않게 만난 난청인이 없다. 그러니 내 생활반경에서 청각장애인은 나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 내가 또 다른 청각장애인분과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전공과가 있다. 고등학교 통합반 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취업을 목표로 전공과에서 2년 실습을 하는 과정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통합반 학생들은 전공과로 진학한다. 전공과 아이들은 2년동안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장애인 바리스타로 취업하기도 하고, 각 기업들과 연계된 장애인 일자리로 취업을 하게 된다. 


각 학교내에서도 ‘장애인 일자리 사업’으로 장애인 근로자를 채용하기도 하는데, 우리 학교에서도 장애인고용공단을 통해서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승인받아 전공과 학생 한 명을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에 취업시키게 되었다. 청각장애가 있다는 이 학생은 나와 똑같이 인공와우와 보청기를 착용하는 상태인데 소통을 조금 힘들어해서 바리스타 취업이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도서관 실습을 통해 내가 관리하고 있는 도서관에 실무 보조로 취업하게 된 것이다. 학생에서 취업을 한 직장인으로 신분이 바뀌었으니 ‘A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겠다.    


  

A 선생님은 인공와우를 착용하지만 듣는 부분이 나보다 약한듯 했고 언어장애도 있다. 그러다 보니 A 선생님과 나는 대화라는 것을 하면 몇 번의 동문서답이 왔다갔다 하고 어쩔 수 없는 침묵이 흐르고 마는 상황이 많았다. 


/


나: A 선생님~ 크리스마스때 뭐해요?

A 선생님: 유튜브 봅니다. 

나: ?? 유튜브?

A 선생님: ...? 유튜브...

나: 유튜브 말하는거 맞죠??

A 선생님: 저 죄송한데 한번만 더 말씀해...

나: 크리스마스때 뭐하냐구요~^^

A 선생님:아 그냥 집에 있습니다.

나: 내가 아까 물어보는거 뭐라고 들었어요?

A 선생님: 집에서 뭐하냐고... (멋쩍은 웃음)

나: ^^ 크리스마스때 어디 안가고 그냥 집에 있는다는거죠?

A 선생님: 네 어디 안가고 집에 있습니다. 

나: 네 알겠습니다~^^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 한번 보여주며 마무리!)


/


폐기도서를 노끈으로 포장 작업하는 A 선생님의 자세가 왠지 위태위태해 보인다. 커터칼을 쥐고 노끈을 자르는 손에 힘이 없어보이는게 자칫 칼이 엇나갈까 보는 내가 노심초사.    

 

나: A 선생님~ 몸 안 좋아요?

A 선생님: 아닙니다.

나: 사고 날 거 같아요~ 다칠거 같아~ 

A 선생님:천천히 다 하겠습니다.

나:아니아니~ 칼로 자르는게 불안해보여요~ 몸 안 좋아요?

A 선생님: 네. 다 끝내겠습니다.     


우리의 힘들디 힘든 대화이다.


나는 또렷한 발음이 아니면 분별하는데 애를 먹는데 A 선생님의 발음은 내가 알아듣기가 힘들고, 내가 입모양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해도 인공와우로 완벽하게 듣지 못 하는 A 선생님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며 무안하고도 미안한 웃음을 짓는다.   

   

‘어? 저거 내가 아는 리액션이다...’     


A 선생님의 행동에서 너무나도 친숙한 행동과 리액션을 발견하곤 한다. 


“선생님~!” 하고 부르면 “네?! 네!” 혹시 한 번에 듣지 못 했을까봐 다급하게 대답한다.

-> 인공와우를 하고는 덜 해졌지만, 그 전에는 보통 여러번 불러야 대답을 했어서 상대방의 부름에 항시 미안했고 민망했다. 


보통은 못 알아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알아들은 척 어영부영 넘어가니 지시한 업무를 해결하지 못 한다 -> 못 알아들었다고 이야기하면 되잖아! 라고 건청인들은 말하지만, 못 알아듣는 것도 한 두번이지 매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할 자존감도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라는 물음에 미안하고도 무안한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 상댕방은 나를 비난하는게 아니지만, 그 물음에 내가 자동 ‘을’이 되는 듯한 무거운 기분을 느낀다.       


A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면서 지난 나의 모습, 지금도 남아있는 나의 어떠한 모습들을 보는 듯해서 속상하기도, 안타깝기도 했다.    

  

내가 잘 못 듣다보니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까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불편함을 느낀다. 그런 감정들이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어 나에게 다가오기 더 불편하게 만들었으리라.     

 

내가 난청인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난청인 선생님과 함께 1년을 근무하다보니 너무 속상하게도 최소한의 대화만 하게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엔 나와 A 선생님의 세대차이도 분명 있었겠고 (나는  40대, A 선생님은 20대), 생활 환경도 너무도 달랐기에 (나는 워킹맘, A 선생님은 건장한 청년) 더 공통사가 없기도 했지만, 빈번하게 찾아오는 동문서답과 멋쩍은 웃음은 우리가 더 편해지는 것에 장애물이 되었다. 적은 확률로 만난 나와 A 선생님은 서로의 장애가 서로에게 불편했을 것이다. 나 역시 건청인들에게 이렇게 느껴졌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서글픔으로 다가왔다. 

    

난청인이지만, 그래도 나는 ‘꽤’ 잘 듣고 말도 잘 하잖아 라는 자기 위안이, A 선생님을 만나고 보니 도토리 키재기였다고 느껴졌다. 어쨋거나 난 난청인이었고, 난청인으로서 놓치는 부분들이 건청인에게는 (장애를 알면서도) 답답하고 조심스럽게 여겨졌을거라는 사실에 시무룩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여러 선생님들이 도서관에 찾아와 나와 대화를 하고 관계를 맺어갈때마다 내가 난청인이라는 것을 잊고 살아갔는데, 결국 극복할 수 없는 특유의 포인트들을 A 선생님을 통해 확인할때마다 ‘에이..’ 하고 시무룩해지는 자존감의 널뛰기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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