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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오늘도, 우리만 남았네?

오늘치의 행복

by 개경님

우리 집에서 식탐이 가장 좋은 사람?
나랑 셋째 딸이다.


좋아하는 음식의 취향도, 먹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닮았다.
입 안 가득 음식을 채우고 오물오물 씹는 그 순간,

둘 다 참 행복해진다.


고양이 똥만큼 먹고는 “배불러…” 하는 첫째.
맨날 “배 안 고파”라며 밥을 거르는 둘째.

그들 속에서 끝까지 식탁에 살아남는 우리 둘.
식사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때마다 묘한 동지애가 생긴다.


셋째는 나랑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아이인데,

동시에 나와 대화가 가장 힘든 아이이기도 하다.
발음이 부정확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듣기 어렵다.

하교하면서 매일 전화를 건다.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학원 끝나고 집에 바로 안 갈 거라는 소소한 이야기들.

하지만 내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어… 뭐라고 했어?”

한 번 더 말해달라고 하면,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끊어요~”


그 순간, 밥 앞에서 뿜뿜하던 동지애는 사라지고 우리는 ‘세상 남’이 된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또 아무렇지 않게 웃을 거란 걸 알지만

그 “끊어요~” 한 마디에 살짝 미안하고, 살짝 서운하고, 살짝 짜증 난다.


그래도, 매일 잊지 않고 전화를 걸어주는 고마운 13살.
오늘 저녁엔 야식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넷플릭스를 틀어두고 테이블 위엔 야식 한 상.

하나, 둘, 식구들이 자리를 떠나고 결국 또 우리 둘만 남았다.

그때 눈을 마주치며 말하겠지?


“또 우리만 남았네?”


이 문장은, 오직 우리 둘만 웃을 수 있는 공감의 언어.


오늘치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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