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8. 여보세요...?

직장에서 걸려온 전화였다니!

by 개경님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이다.

10년 동안 세 아이들을 키우다가 아주 운이 좋게 교육감소속근로자로 채용이 되었다.

어디서도 일을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도피처로 결혼을 선택한 나였는데, 그런 내가 매일매일 출근할 직장이 생겼다는 것은 늘 꿈만 같다.


인공와우를 하고는 디테일이 떨어지지만 작은 소리들도 조금씩 들린다는 사실이 나에겐 더 없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서가정리를 하고 있어도 들리는 교내 벨소리, 도서관 문이 열릴 때 나는 소리는 내가 근무하는 동안 긴장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집이 아닌 공간에서 긴장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나에겐 늘 소망하던 일이자 불가한 일이라고만 여겨지던 것이었다.


남아있는 개인 연차를 겨울방학 때 알차게 쓰면서 모처럼 휴일을 만끽하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032-###-####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울렸다.


02 혹은 070 같은 번호는 바로 차단을 눌러버리는데, 새 학기를 앞두고 아이들 관련 혹은 행정업무 관련으로 기관에서 전화가 올 수 있기에 지역 번호가 찍히는 전화는 무조건 받는다. (나는 인천에 살고 있고 인천의 지역번호는 032이다.)



"네.. 여보세요..?"


인공와우를 하며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와 파동이 확실히 넓고 깊어졌지만 말의 분별력은 별개의 문제였기에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는 건 아직도 고난도에 속한다.

어떤 대화를 하는지 유추가 가능할 때는 그 대화가 잘 들리지만 편안한 사람과의 대화라 하더라도 예측할 수 없는 대화이면 알아듣지 못하는 멘붕에 빠질 때가 10번 중 9번의 비율이다.

예를 들면, 올케와 전화 통화로 이사 이야기를 하다가 올케가 갑자기 "아 언니 근데 곧 아버님 %% 이잖아요?"라고 했을 때 분명 나는 '기일'이라는 단어를 알고 나도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예상치 못 했을 때 들으면 그 단어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전화가 올 때는 중요한 전화일까 봐 온 신경이 곤두서고 긴장도가 급작스레 높아진다.


수화기 건너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입니다."

"네..? 누구시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입니다."


두 번의 반복에도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침묵이 흐르자, 수화기 건너편에서 "다시 걸게요~" 라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고 다시 전화가 걸려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기 위해서 032 번호를 네이버에 검색해 본다.

그랬더니 뜨는 결과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아닌가?!


그때서야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던 "선생님, @@입니다."의 말소리가 안개가 걷히는 듯하면서 들리기 시작한다.


"선생님, 교감입니다." "선생님, 교감입니다." "선생님, 교감입니다."

...


그 뒤로 전화가 다시 오지는 않았지만, 교무실로 다시 전화해 볼 용기도 생기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한들 교감선생님의 용무가 무엇이었는지 몰라서 못 알아들을 확률이 높으니깐..


그날은 오후 내내 "선생님, 교감입니다."이라는 멘트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며 반복되었다.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샤워를 하면서도.

그리고 한동안 잠잠하던 관절건선이 손가락 마디에 올라왔다.


이 놈의 청각장애는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나를 한 번씩 지옥으로 잡아끈다.


KakaoTalk_20250226_141831532.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37. 들리지 않았던 경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