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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밧!데!리!

나의 멘탈은 오늘도 충전 중-

by 개경님

나는 학교 도서관 사서다.

교육청 소속 근로자로 강화도 학교에서 2년을 근무했고, 지금은 인천 시내의 한 특수학교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은 정신지체 특수학교로, 7살 유치부부터 21살 전공과 학생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한다. 교실에만 있기 힘든 아이들이라 도서관은 중요한 쉼의 공간이다.

매주 한 번, 반별로 1시간씩 도서관에 들른다. 도서관에 들어오면 아이들은 책장보다 사운드북을 먼저 찾아간다.


삐뽀삐뽀~
도레미~
작은 별~


전공과 1학년, 그러니까 20살인 아이들도 100가지 동요가 나오는 사운드북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20분까지.


그 시간 내내 도서관은 시끌벅적하다.

아이들이 누르는 사운드북 소리, 자기 분에 못 이겨 소리 지르는 아이들, “조용히 하자~”는 선생님의 목소리. 여기선 '도서관=조용한 곳'이라는 공식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두 반이 함께 오는 시간엔 평균 12명의 아이가 도서관에 들어오는데, 그중 10명은 사운드북을 누르고, 3명은 교실 세 칸 크기의 공간을 탐방하느라 온갖 소리를 낸다.


이런 날은 내 인공와우가 사방의 소음을 신경에 그대로 입력하느라 건전지가 두 배는 빨리 닳는 것 같은 느낌이다. 와우(인공와우)는 거리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1미터 거리에서 말해도, 바로 옆에서 말해도, 소리 크기는 거의 같다.

그래서 시끄러운 도서관 안에서는 **그냥 다 소음**이 되어버리기 쉽다.


그날도 전공과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20살 여학생이 도서관에 왔다. 귀엽고 밝은 아이.

사운드북을 너무 좋아해서 도서관에 올때마다 대출해 가는데 수업시간에 너무 눌러댄 탓에 대출 금지를 당했다. 그래서 도서관 수업 때만큼은 눈치 보지 않고 사운드북을 마음껏 누르고 간다.

이 학생은 언어장애도 있어 발음이 좋지 않고 하나의 단어를 이야기 할때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이다. 사운드 책을 들고 나에게 걸어오길래 대출해 달라고 하는 줄 알고 대출이 안된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그랬더니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더 큰소리로 이야기한다.


“# # 줘.”


소음이 많은 탓에, 발음이 선명하지 않은 탓에, 나는 또 지레짐작했다.

'대출해달라는 거구나.'

“이건 대출 안 돼~” 하며 다시 돌려보냈다.

그랬더니 다시 사운드북을 들고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는 입을 또박또박 움직이며 말한다.


“밧! 데! 리!”


…아.
"건전지가 다 되었어?"

나는 얼른 건전지를 갈아줬고, 아이의 사운드북은 다시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잘못 들었거나 지레짐작으로 대답했을 때 화끈+탈탈탈 멘탈이 백지처럼 무너진다. 당황하고, 미안하고, 스스로에게 서운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아이들과 도서관에서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오늘도, 소리 넘치는 이 도서관 한복판에서 와우의 건전지가 닳아도 내 마음만은 더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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