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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소리를 눈으로 듣는 아침
청각이 아닌 감각으로 듣는 날
by
개경님
Apr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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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머리를 짓누르는 듯한 편두통이 몰려왔다.
인공와우를 착용해야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소리에 예민한 편두통이 발생하면 와우로 들어오는 소리들이 버거워진다. 그렇게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채 집을 나섰다.
운영 중인 매장에 가야 했기에 발걸음을 옮겼지만, 내가 마주한 세상은 고요했다. 아니, 고요함을 넘어 무였다. 비가 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 나는 맨 손으로 집을 나섰다가 아파트 입구에서 내리는 비를 마주하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 우산을 챙겨나왔다.
인공와우없이 집을 나선 나는 ‘눈’으로 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길가의 웅덩이에 맺힌 작은 물방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비가 오고 있어.”
그렇게 나는 세상이 소리 없이 젖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나는 그저, 비가 떨어지고 있음을 ‘보고’, ‘느끼고’, ‘상상’할 뿐이다.
우산을 폈지만, 그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나에게 들릴 리 만무하다. 그래서 나는 상상해본다.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톡톡’일까, ‘토도독’일까. 들리지 않는 그 소리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그려본다.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기에 바람의 존재를 느낀다. 인공와우를 착용했다면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들의 바스락 소리가 요란했겠네, 하고 생각한다.
소리가 사라진 세상은 낯설지만, 또 묘하게 평온하다.
혼자만의 무음 속에서 나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본다.
눈으로 듣고, 피부로 느끼고, 마음으로 해석하는 하루.
오늘, 나는 소리 없는 풍경 속을 조용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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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와우
편두통
청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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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님
들리지만 안 들리는 (인공와우) 청각장애인의 상황을 에피소드를 통해서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은 세 자매의 엄마이자 학교 도서관 사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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