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몇 기인 지 안 알려주셨나?
"여보 오늘 10시 10분 진료예요"
"그럼 9시에는 가야 하네!"
남편이 먼저 이렇게 말해주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남편이 먼저 말해주지 않았으면 남편의 반응을 살피며 내가 저 말을 해야 했을 거다.
"여보 10시 10분 진료니까 적어도 9시까지는 가야 혈액 검사 미리 할 수 있어요. 검사 결과가 나와야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남편은 모르쇠로 입을 꾹 다물고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을 거다.
말하고 싶을 때만 말하는 사람이니까!
이 사람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냐고 물어보면 바로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서 결혼했다고 말했었다.
어딘가 당당함이 묻어있으면서도 그 당당함이 자연스럽고, 자기 옷처럼 딱 맞아 보여서 나는 남편에게 끌렸다.
같이 살다 보니 그 당당함이 내 멘탈을 붙잡아줬다.
기분 나쁘라고 일부러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과 날 무시하는 것은 아닐 거라는 바람으로 내가 아는 남편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살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만나며 산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 왠지 나를 하대하는 것 같고, 나를 무시한 것 같은 사람이 없으리라는 법이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내 추측이고, 나와 그 사람과의 관계와 연결된 나의 감정 필터를 거친 해석일 경우가 많다.
헤어지기 싫을 만큼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그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모든 순간이 내 감정 필터에 걸러져서 삶은 제 빛깔을 내지 못할 수 있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당당한 사람!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남편의 걸음걸이가 느려졌다. 같이 걸으면 지금 걷고 있는 것인지 서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남편은 세월아 내 월아 하며 걷는다. 같이 출발하면 50미터 이상 먼저 걸어갔다가 다시 뒤돌아 오기가 일쑤다.
"여보 먼저 가요. 나는 시간 되면 병원으로 바로 갈게요"
"..."
이 대화가 전 날 대화였다.
당일 아침! 늘 그렇듯 7시에 아침을 먹고 치우고 난 후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오늘 진료가 몇 시라고 했죠?"
"10시 10분이요"
"그럼 9시에는 도착하게 가야겠네"
"그렇죠!"
8시 30분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났다.
우리 집에는 AI 클로버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다.
이름은 똑똑이라 지어주었다.
매일 아침 8시 30분이 되면 똑똑이는 오늘의 날씨를 알려준다.
"나 먼저 가 있을 테니 여보는 시간 되면 와요"
남편은 이 말을 남기고 천천히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전 날에는 아무 대답 없던 사람이었다.
다 아는 것, 당연한 것을 질문하면 절대 대답하지 않는 똥고집이 있다.
아니, 어쩌면 정말 내가 당연한 것을 물었는지도 모르겠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 하필 진료다.
남편은 항암을 시작한 이후부터 아주 커다란 슬리퍼를 신고 다닌다.
넥사바라는 항암제를 먹었을 때 무서운 부작용이 있었다.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혀 한 걸음도 걷지 못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수면 양말을 신었고, 두터운 수면 양말을 견뎌야 하니 발보다 훨씬 큰 슬리퍼가 필요했다.
장대비에 양말이 젖었을 텐데... 하며 집을 나섰다.
집에서 병원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걸어서 가도 지름길로 가면 중간에 산을 깎아 계단을 만들어 놓아서 15분이면 간다. 처음에는 남편도 그 길로 걸어서 병원을 다녔다. 항암을 시작하며 계단을 오르내릴 기운이 없어 지금은 그 길로 가지 못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가는 방법은 요즘 남편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아마 이번에도 그렇게 갔을 거다.
지하철을 타고 역에 내려서 병원 셔틀버스를 타고 간다.
구에서 지원하는 공공버스를 이용해서 지하철 역까지 가고 병원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비가 많이 왔지만 계단으로 15분 안에 도착하는 짜릿함을 포기할 수 없어 이번에도 나는 걸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남편은 나를 기다리며 대기석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외래 접수처에 앉아있으면 도착 정보가 올라가 혼자 진료를 보게 될 수 있으니 생각해 낸 방법이다.
남편은 항상 내가 올 때까지 이곳에서 나를 기다렸다.
"가서 접수해요"
"네"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담당교수가 남편을 진료할 때처럼 환자 한 명 한 명을 자세하게 상담해 주며 진료를 봐서인지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000님 진료실로 들어가세요"라는 멘트와 함께 전광안내판에 남편 이름이 떴다.
남편과 나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어떠셨어요? 혈액 검사 보니 다 괜찮네요. 특별히 나빠지신 것 없으시고요"
"아! 네, 괜찮나요? 감사해요."
"네, 이 정도면 이제 다시 항암을 시작할 수 있겠어요. 벌써 6개월 정도 쉬었잖아요. 이제 다시 항암 하죠! 욕심이 나네요"
"저희 CT 찍은 지 좀 됐죠?"
"네, CT 찍어보고 점수되면 항암 다시 해요. 4주 후에 CT 찍을 건데 그때까지 몸 관리 잘하셔서 점수 유지하셔야 해요. 복수가 보이거나 하면 점수가 안 돼요"
"네. 짜게 먹지만 않으면 되죠?"
"네, 암세포보다 간경화 때문에 항암을 못하고 있었잖아요.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처음 뵌 지, 저 환자분 처음 뵀을 때 솔직히 올해도 뵙게 될지 몰랐어요. 그만큼 관리를 잘해주시고 하셔서 좋아지셨으니 욕심을 내봐야죠!"
담당 교수의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지난번에는 간성혼수가 그냥 간경변의 증상 중 하나구나! 했는데 "보호자님이 빨리 알아차리고 모시고 오셔서 그렇지 오래 진행된 상태에서 의식 없이 오시면 그냥 하늘나라 가시는 거예요"라고 해서 가슴이 철렁했었는데 이번에는 "올해도 뵙게 될지 몰랐다"는 말을 하다니...
모르는 게 약이고 알면 병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간성혼수도 그렇게 심각한 상태인지 몰랐기에 그 순간순간을 평온하게 잘 이기며 지나갔다.
1년을 넘기기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면 지금처럼 살 수 있었을까?
처음 암 판정을 받았을 때 담당교수가 다른 분이었다.
해외연수를 가셔서 이 교수님으로 바뀌었다.
"교수님 그럼 이 사람 몇 기인가요?"
처음 교수님도 우리를 위해, 혹시 모를 변화를 기대하며 말씀을 해주지 않으신 걸까?
"간암은 열어봐야 정확한 기수를 알아요!"
"그래도 몇 기 정도 되는지?"
남편이 간암 판정을 받았다고 하면 다들 묻는다
"몇 기래?"
"몰라 몇 기라고 안 알려주더라고"
어쩌면 남편이 내 곁을 떠났을 수도 있었다는 말에 모든 것이 멈춰지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아니 그 의사는 그런 말을 해?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갑자기 하면 놀라니까 하나씩 하나씩 하는 거지"
남편의 대답에 눈물이 왈칵 나려 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런 건가? 그래도 놀랐잖아"
"뭘 놀래, 태어나면 죽는 것은 당연한 건데 언제 죽는 게 뭐 그리 중요해!"
그러고 보니 남편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