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닌 시간 속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사랑해요! 감사해요! 죄송해요! 그래도 사랑해요!

by 어모쌤 손정화

아빠를 매주 한 번이나 두 번 만나러 간다!

아빠가 계시는 요양병원은 집에서 버스 타고 40분 정도면 도착한다.

아빠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얼른 가” 하신다!

아빠는 요양병원에 계시면서 사실 자식들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가까워지셨다!

집에 계셨을 때 물론 우리가 잘 안 한 건 아니다.

당연하게 곁에 계시니 그냥 오고 갔다.

2019년 폐암 판정을 받으시고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나실 수도 있구나!

우리 육 남매는 매일매일 집을 오고 가며 각자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우선 단백질 식단을 위해 동생들은 자매 회비로 장을 봐왔다!

돌아가며 친정집 청소를 했다!

병원을 모시고 가는 것도 시간이 되는대로 돌아가며 했다.

그러다가 2022년 엄마가 난소암 판정을 받으셨다!

엄마의 항암은 아빠와 달랐다.

항암 주사는 엄마의 삶을 얼굴을 바꿔 놓았다.

요양병원이라면 진저리를 치시던 때였다.

암환자는 수술 후 회복기에 요양병원에서 있다가 집으로 가기도 한다고 말씀드려도 엄마는 요지부동이셨다. 그러다가 언니랑 내가 함께 가서 돌봐드리겠다고 해서야 마음을 바꾸셨다.


엄마의 복강경 검사가 있었을 때 아빠는 집에 혼자 계셔야 했다.

언니는 엄마 입원 기간 내내 병원에서 생활했다.

아빠의 식사를 내가 책임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빠 식사를 챙겨드리러 친정으로 갔다.

퇴근하고 바로 친정으로 가 아빠 식사를 챙겨드렸다.

요리 솜씨가 좋지 않고, 음식이라고 할 줄 아는 것이 많지 않아 아빠가 고생하신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인 항암을 시작하기 전에 자궁과 난소를 들어내기 위해 수술을 하러 입원하셨을 때도 언니는 엄마와 병원에서 나는 아빠의 식사를 책임졌다.

요양병원으로 퇴원하신 엄마를 일주일 정도 언니와 교대하여 함께 해드렸다.

주말에는 동생들이 돌아가며 교대해 주었다.

우리 6남매는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엄마, 아빠의 항암 과정을 함께 했다.


엄마의 항암이 시작되던 때에 감사하게도 엄마를 곁에서 하루 종일 돌봐드릴 수 있었다.

잠시 직장에 다니는 것을 멈추었다.

엄마, 아빠 곁에 함께 하며 청소하고, 식사와 간식을 챙겨드리고, 함께 산책하며, 때로는 함께 거실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낮잠을 자기도 하며 6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엄마, 아빠가 드시면 나도 먹고, 엄마, 아빠가 걸으시면 나도 걷고, 엄마, 아빠가 주무시면 나도 잤다.

엄마의 고통과 회복의 반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2023년이 되었고, 엄마는 1년의 시간 동안 잠시 암과 싸우지 않고 지내셨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항암!

2024년! 다시 한번 암과의 싸움을 시작하셨다.

2024년 7월이면 아빠가 폐암 4기를 진단받은 지 정확히 5년이 되는 때였다.

폐에 흉수가 차 입원을 하셨고, 흉수관을 달고 퇴원하셨다.

호전되어서 흉수관을 뺐는데 급성 폐렴 증상으로 입원하셨다.

암 환자에게 폐렴은 무서운, 죽음으로 한 걸음 가까이 가는 고비이다.

소변줄에, 콧줄에, 흉수관까지 달고 집으로 퇴원할 수는 없기에 집과 가까운 협력 병원으로 전원 하셨다.

그곳에서 건강이 많이 호전되셔서 몸에 달고 있던 모든 관을 뺐지만 우리 6남매는 결정을 해야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은 결정을 해야 했다.

항암을 하고 계시는 엄마가 아빠 병시중까지 하시게 할 수는 없었다.

숨이 차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드신 아빠가 집으로 오셔서 계시다가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또 생기면? 하며 이미 단호하게 결정한 것을 번복하지 않으려 애썼다.

마음이 안 좋았다.

간병인을 쓰는 것조차 싫어하시고, 힘들어하시는 아빠인데...

요양병원에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아빠인데...

아빠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아팠다.

정말 많이 울었다.

아빠가 불쌍해서...


우리 6남매는 집에서 가까운 곳 중에서 시설이 가장 좋은, 분위기가 활발하고, 일반 병원 같은 요양병원을 찾기 위해 검색하고 찾아가기를 반복해 최적의 곳을 찾았다.

아빠는 그렇게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작년 아빠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한주도 빠짐없이 각자가 아빠를 뵈러 갔다.

언니와 나는 평일 낮과 저녁 시간을 이용했고, 나머지 동생들은 주말을 이용해서 아빠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아빠와 엄마를 보며 인생이 참 허무하고 덧없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엄마, 아빠처럼 살기 힘들다는 생각도 했다. 엄마, 아빠처럼 자식 교육을 잘 시키기 힘들다는 생각!


엄마, 아빠는 암을 얻으시고 노년에 자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계신다.

암이 아니어도 사실 우리 6남매는 주말이면 모두 모였다.

조금이라도 엄마, 아빠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어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지만 맞는지 모르겠다.


올해도 엄마는 계속 항암 중이시다.

아빠는 요양병원 침대에서 일어나 걷지 못하신 지 몇 달이 되었다.

내 사랑하는 부모님이 이렇게 조금씩 삶의 욕심을 내려놓고 계신다.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있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픈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전처럼 내가 엄마, 아빠를 돌봐드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마 그렇게 결정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이 끝나지 않는다.

엄마, 아빠를 향한 우리의 마음도 끝나지 않는다.

답이 없이 최선을 다하는 답을 선택한다.


엄마! 아빠! 저 정화는...

이글이 끝나도 나는 계속 말하고 있을 테다.

...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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