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 잡고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엄마는 이제 내가 돌봐드려야 할 존재임을 잠깐 잊고 마치 엄마 손 잡고 나들이 나온 아이처럼 엄마가 이끄시는 대로 졸졸 따라갔다
“어? 주사실이 어디에 있지?”
그제야 나는 내가 엄마를 모시고 온 것임을 깨닫고 엄마의 핸드폰에서 병원 앱을 찾아 오늘 일정을 확인했다.
‘왜 이걸 이제야 확인하고 있지?‘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엄마 손을 잡고 확인된 장소로 향했다. 엄마는 길을 잘 아신다. 누구에게 길을 묻거나 헤매지 않으신다. 그런 엄마이기에 한 치의 의심 없이 엄마를 따라갔던 거다.
“ 언니 손만 잡고 따라다녔더니 내가 길을 모른다”
하시며 스스로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계속하셨다.
며칠 전 엄마를 모시고 몇 가지 검사와 지난번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에 왔었다. 언니와 늘 오셨었는데 언니가 독감에 걸려 같이 오지 못해 내가 엄마와 함께 왔었다.
7시도 되기 전인데 검사실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응 우리도 이따 여기로 와서 혈액 검사할 거야”
항암 6차를 하시는 동안 노하우가 생기셨다고 하셨다.
엄마가 이끄시는 대로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가니 엑스레이 검사는 진행 중이었다.
빠르게 접수를 하고 엑스레이 검사를 받으셨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아까 길게 늘어섰던 줄이 없어졌다. 또 빠르게 혈액검사를 하셨다.
다시 위층으로 가야한다시며
“ 저기 저 진료실 보이지? 나 심전도 검사하는 동안 너는 빨리 내려와서 저기에 아까 그 사람들처럼 줄 서있어야 해! ”
위층으로 올라가니 아직 심전도 검사실은 불이 켜지기 전이었다. 검사실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엄마와 나는 그 사람 뒤에 줄을 섰다.
진료실 문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보니 아직도 40분 넘게 기다려야 검사가 시작된다는데 사람들은 하나둘 줄을 길게 만들었다. 내가 서 있기로 하고 엄마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아계시라고 했다.
의자도 없고, 그냥 벽에 붙어 40분을 기다렸다.
검사실 분이 열리자마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순서대로 입장해서 번호표를 뽑았다.
“너는 이제 아까 거기로 가서 줄 서 있어 일등으로 들어가게 “
엄마 말씀대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진료실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반대편에 의자가 있었다.
잠깐 의자에 앉아 있어도 되겠지? 하며 의자에 앉아 있었더니 엄마처럼 비니를 쓴 어르신과 보호자로 보이는 어르신이 오셨다. 여자분은 휠체어에 앉아계셨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며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무래도 줄을 서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엄마께 전화를 했다.
“엄마! 여기 의자 있는 데에 그냥 앉아있으면 안 되는 거야?”
“아니, 아무도 없었어서 의자에 앉아있는데 줄 서야 하나? 해서”
일부러 내가 먼저 왔노라! 내가 일등이다! 를 어필하며 그분들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그때 젊은 여자분이 진료실 앞에 섰다. 일등은 빼앗겼지만 줄을 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여자분 뒤로 줄을 섰다. 마음에서는, 아니 입에서는 “ 제가 더 먼저 왔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꾹 참았다.
그런 우리를 보신 할아버지께서 휠체어를 끌어 진료실 앞으로 오시더니 아무 말 없이 휠체어를 반대편에 세워놓으셨다
무언이었지만 “ 그렇다면 내가 먼저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런 내적 갈등을 하며 줄을 서 있는 동안 검사를 마치셨는지 엄마가 내려오셨다. 엄마가 들을 수 있도록, 그러면서 내 앞에 선 여자분이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 엄마 꼭 일등으로 서 있지 않아도 되지? 원래는 내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앞에 서 있던 여자분이 내 말을 부드럽게 자르며 말했다.
“제가 먼저 왔었어요. 왔는데 아무도 없길래 밥 먹고 와서 그렇지 제가 먼저 왔었어요”
아! 그렇담 인정이다. 괜찮다!
그 여자분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음속에서 일렁이던 뭔가가 사라졌다.
그렇게 진료를 보고 진료비 결제를 할 때, 무인 결제기에 결제를 하려고 하는데 엄마는 내가 못 미더우신 건지, 똑같은 기계인데 여기가 아니라 우리는 다른 곳에서 하는 거라시며 나를 데리고 또 본인이 아는 곳으로 이끄셨다.
생각은 그러셨지만 언니 손만 잡고 다니셔서 그날도 엄마는 길을 잃으셨다. 엄마를 대신해 다시 길을 찾아야 하는 건 내 몫이었다. 그때도 생각했다.
‘아! 엄마를 내가 모시고 다녀야 하는데... 언니 손 잡고 따라만 다니셨던 것처럼 나도 그래야 하는데... ’
생각이 여기에 머무니 갑자기 엄마가 나를 못 미더워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서 멈춰져야 할 생각이 자꾸 다른 꼬리를 물고 와서 한순간에 나를 초라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내적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여기에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 하고 오십이 넘은 딸 손을 잡고 물으셨다. 그 순간 아까 물고 온 꼬리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엄마의 말을 존중하며 다른 기계에서 결제해야 하나? 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고, 그 결제마저도 기계 앞에 서 있는 안내 요원의 비꼬는 듯한 안내를 받으며 마쳐야 했다.
“엄마! 엄마랑 아빠는 내가 좀 모자라게 느껴져? 아니 내가 그거라고 하는데 왜 아니래? 엄마가 아니라고 해서 정말 그런가 하고 엄마 말대로 했는데 아니었잖아! 근데 또 그 기계에 내가 하면 되는데 그 사람한테 해달라 하고 “
볼멘소리임을 알아차린 엄마가
“엄마 아빠가 왜 너를 그렇게 생각해? 네가 왜 모자라? 그런 생각하지 마! 엄마가 몰라서 그래”
“엄마가 모르면 언니 손 잡고 따라다니듯이 내 손 잡고 따라다녀야지! 왜 안 그래? 내가 모를 것 같아? 엄마가 그러면 나같이 착한 딸은 엄마 말을 믿고 그대로 한단 말이야! 엄마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그렇게 된다고”
“네가 착한 건 아냐?”
다른 자식들이랑 있을 때에는 본인 목소리 안 내시는데 유독 둘째 딸인 나와 있을 때에는 본인 목소리 내시는, 엄마가 엄마다와지는, 아직도 손 잡고 데리고 다니는 딸임을...
“엄마랑 아빠랑만 있을 때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 있을 때 그러면 내가 완전 멍청이가 된 느낌이야! 지난번에도 교회 사모님이랑 어르신들 모시고 영화 보러 갔을 때! 그때도 엄마가 나를 못 믿어서 그러는 바람에 잘 알고 찾아가던 길이었는데 엄마 말이 맞나? 하며 따라갔다가 아니었잖아! 지금도 아까 그 기계에 하면 되는 걸 난 또 엄마가 말한 것처럼 다른 곳에서 해야 하나 하고 결제 버튼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하이패스 카드 등록된 기계가 따로 있나 하고 엄마 말 들은 거잖아”
맺혀있던 걸 풀어내자
“넌 그게 언제 적 이야기를! 그런 걸 마음에 두고 있어! 그런 건 그때그때 말하고 풀어야지!”
“엄마가 몰라서 그랬다고 했잖아”
갑자기 쏟아붓는 딸의 불만을 듣고도 딸 걱정해주시는 엄마의 말에 마음이 녹아버렸다.
“내가 좀 띨띨하기는 해”
그렇게 웃으며 그 상황을 마무리했다. 그사이 우리는 식당에 들어와 앉았고 각자 먹을 음식을 주문했던 터였다.
내가 좀 띨띨한 것으로 마무리를 짓고 우리는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다짐을 했다.
‘ 엄마는 이제 내가 모시고 다녀야 해!’
그래 놓고 며칠이 지났다고 오늘 또 나는 엄마 손을 잡고 해 맑게 따라다녔던 걸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이다!
내가 좀이 아니라 많이 띨띨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