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도 처방해주지 않는 게 의사야?
남편은 늘 의사를 양아치 새끼라고 하며 욕을 한다.
본인이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아프면서 가만히 있는 의사를 양아치 새끼라고 하니 나는 그럴 때마다 버럭 소리를 지르기 일쑤다.
남편은 병원 가는 것을 너무너무 싫어한다.
결혼하고 병원에 간 것은 정말 피치 못 할 상황이었을 때뿐이었다.
처음 간 것은 신혼 첫 해 겨울이었다.
귀가가 늦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술에 취해 들어와 화가 나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가 일어나 바로 출근을 했었다. 그 당시 나는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지금처럼 모두 사용하던 때가 아니었다. 유치원으로 전화가 왔고,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뭐라고요? 병원이라고요?"라고 해야 했다. 그 길로 집 앞 병원으로 갔다.
남편의 왼 팔이 너무 많이 부어있었다.
"보호자이신가요?"
"네"
남편은 어젯밤 술에 취해 들어오다가 일명 '아리랑치기'를 당했다고 했다. 뒤에서 각목으로 내리쳐 왼 팔 뼈가 으스러졌고 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 내가 어떻게 일처리를 했는지? 무슨 정신으로 남편 간호를 하며 유치원을 다녔는지!
결론적으로 남편의 팔에는 그때 박은 철심이 아직도 있다.
그 이후로 남편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지금까지 살았다.
아니 감기가 걸려도, 넘어져 눈이 피멍이 들었어도, 이마가 찢어졌어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니 남편이 건강하게 산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 순간순간들은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남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속이 타들어가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던 남편이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코로나로 힘들어하던 중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서 잠시 실업급여를 받으며 쉬게 된 일이 있었다.
일 할 때에도 그렇게 열심히 일 한 것 같지 않은데 갑자기 직장을 잃은 것이 심적으로 큰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남편의 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발이 붓기 시작했다.
"여보, 나 한의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집 앞에 있는 한의원에 가 봐요"
남편이 보낸 카톡을 보고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평소 그렇게나 많이 술을 좋아해 몸 생각 하지 않고 들어부었으니 몸이 아무렇지 않은 게 너무나 이상한 상황이었다. 남편과 나를 아는 사람들은 우리를 길에서 보거나 하면 " 000 어디 아파?" "000 간은 괜찮아?" 하고 물어보았었다. 그렇게 남편은 그냥 봐도 아픈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프지 않았다.
집 앞 한의원에서 몇 번 침을 맞고 온 남편은 한의원에 같이 가주기를 바랐다.
남편이 침을 맞으러 갈 때 같이 갔다.
한의사가 이렇게 발이 붓는 것의 이유를 알고 침을 맞아야 할 것 같다며 건강검진을 받고 오라고 했다.
국가 건강검진을 아직 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남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건강검진 결과 간수치의 이상 소견이 보였는데 상위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절대로 가지 않겠다는 남편을 어르고 달래어 아산병원으로 갔다.
건강검진을 한 병원에서 바로 소화기내과로 의뢰서를 써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남편의 발에 붉은 반점 때문이었는지 류머티스과로 의뢰서를 써주어 초진은 류마티스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어차피 남편 간이 문제인데... 돌고 돌아 소화기내과 진료를 받게 되었다. 그 사이 여러 가지 검사를 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남편은 너무나 못마땅해했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날 소화기내과 진료실에서 남편이 들은 말은 "술을 끊으셔야 해요!" 이 한마디였다.
다음 진료와 검사를 모두 거부해서 그 이후 병원을 다니지 못했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남편 간 기능이 50%가 남았다는 말만 듣고 온 셈이 되었다.
남편은 의사가 약도 처방해주지 않고, 그 비싼 검사를 해 놓고 술 끊으라는 말만 할 거면 그게 의사냐고 그런 말은 본인도 할 수 있고, 의사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아니냐고 하며 의사는 모두 양아치새끼들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남편은 의사는 모두 양아치새끼들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남편은 술을 끊으라는 말 대신 어떤 것이라도 약을 처방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본인도 술을 끊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술을 끊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돈만 썼지 뭐 하나 건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다시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남편의 간 손상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었던 기회가 멀어져 갔다.
병원에 다녀온 후 6개월 정도까지는 어떤 때는 절주를 하고, 어떤 때는 양을 조금 줄이는 노력을 했지만 곧 남편은 예전처럼 퇴근길에 막걸리를 사 오기 시작했다. 하루 1병이 2병이 되고, 2병이 3병이 되고 점점 늘어났다.
2024년 1월 아산병원 이후 건강검진도 절대 안 하겠다했던 남편이 딸의 부탁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검진 결과는 재 검진이 필요한 상태였고, 상급병원으로 가서 검사도 다시 받고 진료도 받으라는 말을 들었다. 남편은 대학병원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며 검진을 받았던 동네 내과 의사 선생님께 그냥 여기에서 치료받으면 안 되냐고 했다.
"대학병원 의사들은 다 양아치새끼예요. 그냥 선생님이 해주세요"
의사 선생님은 이 병원에는 검사할 수 있는 장비가 없으니 우선 그럼 CT를 찍어서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의사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영상촬영만 하는 병원으로 가서 CT를 찍었고 결과를 가지고 병원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