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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모쌤 손정화 May 07. 2023

말 잘 듣는 남편

내 선택의 무게!

남편의 태도를, 마음을 바꾸는 것은 나의 악에 찬 비난의 메시지가 아니라 언제 썼는지 모르는 감사의 메시지를 캡처해서 전달한 것일까?

설거지를 끝내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나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려고 한다.

잠시 멈칫!

어제, 오늘 남편이 자꾸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는 걸 갑자기 깨달았다.

왜지?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남편과 주고받는 톡방을 열어보았다.

하루 사이에 두 가지의 메시지가 공존하고 있었다.

하나는 악에 받쳐 쓴 비난과 저주의 메시지!

하나는 1년 전쯤 쓴 감사 일기를 캡처해서 보낸 메시지!

이 두 개가 위, 아래로 있었다.

처음 톡방을 열어보게 된 것은 '아! 그때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하며 내가 쓴 비난과 저주의 말을 다시 한번 보려고였는데 그 말들을 다 읽고 나니 꼬리표처럼 감사 메시지가 뒤 따라 읽어졌다.

보낸 기억조차 없었던!

남편을 변하게 한 것은 내 악의 비명과 같은 메시지가 아니라 이 감사의 고백일까?


너무나 힘들고 기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 감사함을 찾아봅니다.

1. 남편이 머리 고기를 사다 달라했는데 순대국밥 집에 갔을 때 머리 고기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2.  오늘 남편이 하루 종일 순한 술을 한 번에 한 병씩만 마셔서 감사합니다

3. 남편이 담배를 조금씩 아껴 펴서 감사합니다


감사의 힘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감사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남편에게서 감사를 찾는 것은 정말 인고의 노력을 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남편은 변하지 않았는데 내 눈이 바뀐 것인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것들이 왠지 가능해질 것만 같고, 벌써 가능해지고 있었는데 그동안 내가 못 알아보고 남편을 내 프레임에 가두고 다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술을 무척 좋아한다.

그 좋아하는 술을 몸 생각하고 마시기를 바라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마시려면 좀 순한 술을 마시라고 권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남편은 착하고 순진한 아이처럼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남편은 독한 술 한 병이면 느낄 만취감을 느끼기 위해 순한 술을 여러 병 마시기 시작했다.

TV 프로그램 중 하나에 꽂혀 그 프로그램을 주야장천 보며 순한 술을 마셨다.

TV를 보지 못하게 하려고 TV를 끊었다.

라디오를 실행하라고 하면 틀어주는 AI 사용법을 알려주고 이제부터 TV대신 라디오를 들으라고 했더니 정말 그대로 했다.

그 후로 남편이 집에 있으면 라디오와 순한 술이 함께 했다.

내가 안방에서 TV를 틀고 드라마를 봐도 남편은 거실에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순한 술을 마셨다.

그런 남편이 안 돼 보여 스마트폰에 틱톡 어플을 깔아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더니 이젠 순한 술을 마실 때면 늘 틱톡을 열어 짧은 영상을 보고 또 보고 있다.

하라는 대로 하는 남편인데 미웠다. 아니 순한 술이 지긋지긋했다.

남편을 남편으로 봐주지 못하고 늘 순한 술로 봐왔다.


그 연결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악에 찬 비난과 저주를 멈추고 감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오늘 아침!

남편이 순한 술 마시는 것을 멈추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갑자기 희망이 느껴지고 이 순간을 기록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쓴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을 때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감사함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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