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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모쌤 손정화 Oct 20. 2023

딸이 강아지를 맡겼습니다

이제 엄마 마음을 알겠니?

청년사업가가 이사를 결정했다. 

이사를 하기 전에 방을 내놓아야 하는데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것은 주인이 알지만 강아지가 있는 것은 모르니 잠시 방을 부동산에서 보러 올 동안만 강아지를 맡아달라고 했다. 

유기견센터에 맘에 드는 강아지가 있다고 말하더니 바로 데리고 왔다고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준 것이 바로 몇 주 전 일이었다. 딱 보기에 이 강아지는 똥개다. 딸은 누가 견종이 뭐냐고 물어보면 '시고르자브견'이라고 말하라고 하면서 웃었다. 


딸은 개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딸이 중학생일 때 우리 집에 인형처럼 귀여운 푸들 '해피'가 왔다. 누가 봐도 인형 같아서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했던, 게다가 너무나 착하고 영리했던 강아지 해피를 딸은 정말 너무너무 싫어했다. 그래서 딸이 달이를 데리고 오겠다고 했을 때 '설마?' 했다. 그런데 정말 데리고 왔고, 한 달 사이에 딸에게서 커서 똥오줌을 가리는 개가 되어 우리 집에 왔다. 아직 3개월 강아지이지만 겉모습은 개다. 


달이는 딸네 집에 있을 때 고양이 구름이에게서 뭘 배운 걸까? 고양이가 하는 행동을 한다. 앉아있으면 와서 스르륵 자기 몸을 대고 지나가는 구름이처럼 달이도 그 행동을 한다. 그런데 고양이와는 다르다. 그래서 너무너무 싫다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고양이는 마음을 주지 않다가 갑자기 다가와서 스르륵 지나간다면 강아지 달이는 꼬리를 흔들며 오두방정을 떨다가 남편과 내가 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으면 다리 사이를 정신없이 스르륵스르륵 뱅글뱅글 돌며 정신 사납게 지나다닌다. 하지 말라는 제지에도 아가라서 그런지 놀자고 하는 줄 알고 그러는지 이번에는 낮은 포복자세에서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올리고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얘는 이런 성향인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강아지 달이 때문에 나는 전화 통화를 하다가도 강아지 달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통화를 방해하는 달이를 나무라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강아지가 있는데..." 하며 자연스럽게 달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강아지 달이는 산책을 데리고 나가도 사람들이 "아이고 아가네" 할 정도로 아기티가 팍팍 나는 장난꾸러기 강아지이다. 몸은 크지만 눈동자가 맑고 털이 아직 뻐세지 않다. 무엇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우리나라 속담에서 처럼 달이는 무서운 것이 없어 보인다. 산책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런 달이를 아가라며 무척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봐준다. 


딸이 놓고 간 강아지 용품 중 삑삑 소리가 나는 노란색 인형이 있다. 남편과 내가 달이의 너무 과한 애정 표현에 아무 반응을 안 해주면 바로 달려가 인형을 입에 물고 삑삑 삑삑 소리를 낸다. 빠르게 삑삑삑삑삑삑삑!

아기 강아지는 아기라서 인형을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달이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달이는 인형을 정말 잘 가지고 논다. 노란 삑삑이와 뼈다귀 모양의 인형을 달려가 입에 물고 와 놀다가 자리를 옮길 때에는 입에 물고 가지고 간다. 조용해서 보면 인형을 입에 물고 놀고 있고, 정신없어서 보면 인형을 입에 물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마치 던져서 받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인형을 가지고 논다. 

아가지만 말귀를 알아듣는 것이 느껴진다. 정확히 말하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잘못한 걸 안다. 정신없이 뛰다가 내 책상 위에 있는 미니 선풍기를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 "야! 너!" 했더니 슬금슬금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한 시간 이상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쭈뼛거리며 눈치를 살피더니 살금살금 들어오다가 나에게 딱! 걸렸다! "야! 어딜 들어와" 그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귀여워 일부러 큰 소리로 야단치는 것처럼 했더니 뒷걸음으로 슬금슬금 거실로 간다. 하하하 


요즘 나는 눈 뜨는 순간 강아지 달이와 실랑이를 벌인다. 내가 어디에 갔다 온 것인 양 달이는 아침에 눈 뜬 나를 격하게 반긴다. "내가 어디 갔다 왔냐고! 저리 가" 

달이는 표현이 너무 과하다. 싫다는데 뾰족한 발톱이 있는 두 발을 나에게 던진다. 덕분에 나는 긴 바지를 입고 자야 한다. 아니 일어나야 한다. 


자기 생각에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야단쳐도 야단치는지도 모르는지 야단치면 더 덤벼든다. 처음에는 그런 달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친해지려면 여행을 가라고 했나! 달이와 첫 산책을 시도한 날! 산책길에서 간식을 주며 훈련을 했다. 달이는 생각보다 훈련을 잘 받았고 그날 나는 달이와 친해졌다. 이젠 고운 말로 야단친다. 이런 나를 남편은 달이가 사람 만든 거라고 한다. "네가 사람하나 만드느라 고생이 많다" 


남편과 나만 살던 집에 3개월 산 강아지 달이가 오면서 아침저녁으로 시끌벅쩍해졌다. 딸이 오면 집이 환해지는데 달이가 조금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 딸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달이 뭐 해?" "엄마 달이 보여줘 봐" 하며 톡으로, 영상통화로 나에게 연락을 한다. 사실 좀 서운할 수 있는데 난 서운하지 않다. 오히려 딸이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겠구나 하며 감사하다. 딸이 처음 독립을 해 나갔을 때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하고 영상통화를 하는 것을 조건으로 달았었다. 딸은 이해도 못 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그 약속을 조금씩 사라지게 했다. 엄마가 보고 싶어 하고, 궁금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딸은 엄마에게 맡긴 달이가 궁금해 자주 톡을 하고 영상통화를 시도한다. '이제 알았겠지? 엄마의 마음을!'


곧 달이는 언니의 품으로 갈 것이다. 

"언니가 조금 있다가 데리고 갈게' 

톡으로, 영상통화로 딸은 달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제발 좀 데리고 가라! 나는 오늘 퇴근 후 집에 들어올 때에도 달이에게 앞발로 여러 번 채였다. 

반가운데 왜 발로 차냐고! 

꼬리를 흔들며 나보다 먼저 내 앞길을 가는 달이를 아직도 여러 날 데리고 있어야 한다. 

좋으면서도 귀찮다. 

얘가 가면 딸의 연락이 또 뜸해지려나... 그건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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