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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모쌤 손정화 Jun 22. 2024

이 돈은 어디에 써야 하나요?

나는 아직도 경제관념 제로라...

돈! 하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기억 속 엄마는 요즘 내가 입고 다니는 월남치마 같은 꽃무늬 긴 스커트를 입고 계신다.

"엄마 나  ㅇㅇ 사줘"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뭘 사달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엄마는 지갑을 열어 나에게 보여 주셨다.

지갑 속에는 50원짜리 동전 하나가 달랑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우리 집은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다. 문칸방에 세 들어 사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우린 큰 2층 집에 살았다.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집만 다섯, 여섯 집이었다. 그런데 엄마 지갑에는 돈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돈 다 모아 지금 갖고 계신 부동산들을 사셨나? 한다.

참 알뜰살뜰하게 사신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것 치고는 난 검소하지 못하다.

처음 유치원에 취직해 내 수중에 돈이 생겼을 때 사고 싶은 것을 원 없이 다 샀다.

다음 달! 엄마는 월급의 절반 이상을 요구하셨다. 시집갈 준비를 하려면 적금을 들어야 한 다시며

엄마께 드리고 남은 돈으로도 교통비하고, 가족, 친구들 생일 챙기고, 옷 사고, 용돈으로 쓰는 것이 부족하지 않았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내 나름대로 돈을 부족하지 않게 잘 사용하고 싶어 흰 편지봉투를 한 묶음 사와 봉투마다 이름을 쓰고 돈을 나누어 넣은 후 옷장 서랍에 놓고 필요할 때마다 해당 봉투를 꺼내 썼다.

1주 용돈 봉투에서 꺼낸 돈이 그 1주가 지났는데 남아있으면 적금 봉투로 옮겨 나만의 저금을 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이 생활을 유지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의 월급을 이렇게 나누어 사용하려고 봉투를 만들던 날 남편은 은행을 두고 왜 그렇게 하냐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고 생각되어 그날 이후로 난 이 방법을 쓰지 않았다.


남편도 나도 돈에 큰 관심이 없고, 그냥 먹고살면 되고, 쓰고 싶을 때 쓰면 되고, 없으면 안 쓰면 되는 거였는데 우린 없었던 때가 없었다. 한 달을 살면서 돈이 부족해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그만큼 사고 싶은 것도 적고, 쓰고 싶은 것도 없었는지 모르겠다.

풍족하게 살았고, 베풀며 살았고, 쓸 때 쓰며 살았지만 부족하지 않았다.

신용카드를 쓸 때에도 정해 놓은 금액만큼만 쓰고 더 이상은 쓰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빚이 제로였다. 저축도 제로였다.


어느 날 지인이 나에게 저축을 권했다. 한 달에 70만 원을 저축하면 그 돈이 굴려져 큰돈이 될 거라고!

친한 지인이기도 했고 나를 위해 해주는 말인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게 나의 어려움의 시작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70만 원을 저축해서 빠듯해서 어려웠던 것이 아니다.

내가 저축한 곳은 펀드였고 지인은 내가 투자한 곳이 얼마나 성과를 내는지 자주 알려주었다.

저축이 뭔지! 투자가 뭔지도 모른 상태에서 큰돈이 내 수중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는 걸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깨닫고 있다.


돈이 뭔지 모르며 살 때에는 돈으로 뭐든 다 할 수 있었다.

돈인데 돈으로 느끼지 않았다.

그저 내가 일한 대가로 받은 것이 내가 감사함으로 십일조를 낼 수 있도록 해주고, 밥 사주고 싶은 동료들 밥 사줄 수 있게 해 주고, 청년들 생일 축하도 맘껏 해줄 수 있고, 엄마 아빠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살 수 있고, 남들 머뭇거릴 때 먼저 내고 그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었다.

모을 이유도 없었고, 모아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작은 전셋집에 살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 너 이렇게 살다가 집 한 칸이라도 살 수 있겠냐 하며 부축인 말에도 집을 사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실적을 올리고 싶어 하는 지인을 돕고 싶은 마음에 선뜻하겠다고 했었다.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랬다. 남편도 나도 돈이 중요하지 않았고, 사는 모습이 중요하지 않았다.


모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있으려나?

그렇게 모인 돈이 있어 어린이집을 차릴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 생각이 큰 빚을 만들어줬고, 만들어진 빚이 나를 현실을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어린이집을 정리했을 때 그나마 살던 집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전세자금을 빼 보증금으로 넣고 시작한 어린이집은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보증금마저도 하나도 남기지 못하고 정리되었다.

돈을 모으려고 저축을 했는데 돈이 모이니 빚이 되었다.


빚도 성격이 있고, 종류가 있다.

아마도 예전의 나처럼 빚이 없는 사람은 모를 거다.

빚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잘 다루어주어야만 빚을 정리할 수 있다.

어느 날 생긴 우연한 돈은 나의 기도제목이었다.

"하나님 이 돈은 어디에 써야 하나요?"

당장 생긴 10만 원으로 내 핸드폰비를 내야 하는지?  밀린 전기세를 내야 하는지? 지인에게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으려면 내 눈에서는 눈물이 나왔다.

이상하게도 슬픈 눈물이 아니었다. 감사의 눈물! 묻고 있는 나를 처음 발견한 순간!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났고 그 이후에도 같은 순간이 무척 많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울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제 마음대로 사용했던 지난날을 용서해 주세요! 제가 무지했습니다. 알게 해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돈인 줄 알았다. 내 것인 줄 알았다.

나를 나타내고 나를 높이는 데 사용했었다.

묻지 않았었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돈이 생길 때마다 묻는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묻고 있는 그 순간이 너무 귀해서 그런 순간이 매 순간이기를 기도했다.


지금도 나는 눈먼 돈이 들어오면 묻는다.

"하나님 이 돈은 어디에 사용해야 하나요?"


며칠 전 남편 병원비로 쓴 돈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실비보험을 들어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보험이라면 치가 떨릴 만큼 싫어진 이유도 언젠가는 글로 쓰는 날이 있을 거다.

무수히도 많았던 그 보험들이 휴지조각처럼 사라져 버린 날 나와 남편은 이제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그런 상황은 제발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했다.

그래도 보험을 최소한으로 들어야 한다는 지인들의 권유로 남편과 나의 실비 보험을 들었다.

간이 안 좋은 남편! 간암 보험도 미리 들어놓으라는 설계사의 권유를 무시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아픈데 보험금 챙기려는 마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만약 그때 암보험을 들어놓았다면 지금 남편은 맘고생을 하지 않는 거였다.


그 돈이 들어왔을 때 수중에 어느 정도는 남겨 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달의 카드값을 결제하고 그달에 해결해야 하는 급한 것들을 모두 해결하고 남은 돈은 잠시 세이프 박스에 넣어두었다.  

없으면 쓰지 않을 돈을 야금야금 꺼내 쓰고 있었다.

이러다 아무것도 못 하고 다 써버리겠다는 불안이 엄습해 뭐라도 하자는 생각이 들어 계획이라는 것을 했다. '내가 평소에 기도한 것이 뭐였지?'

'이 돈으로 그동안 아무것도 못해준 조카들 용돈을 줄까?'

'이 돈으로 딸 노트북을 사줄까?'

'이 돈으로 내 노트북을 살까?'

'이 돈으로 뭘 하지?'

매일 이 돈으로 무엇부터 해결하지? 했지만 기도할 생각을 못 했다.

그 사이 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뭐 하나 해결된 것 같지 않은 찜찜함이 컸다.


며칠 전 기도할 때 하나님께 회개했다.

'하나님 제가 또 마음대로 했어요. 어디에 쓰라고 주신 줄 알면서도 제 뜻대로 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이런 기도를 드린 건 돈이 있어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면 행복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경제관념 제로이다.

묻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이고 그냥 두면 큰돈도 1000원 쓰듯이 써버린다.

오늘도 나는 작은 돈이라도 소중한 곳에 꼭 필요한 곳에 쓰이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하나님 저를 단련시키셨사오니 이제 정금같이 사용해 주세요"

내가 기도하며 운 이유이다.

분명 사용하시려고 가만히 있는 잘 사는 나를 단련시키셨을 거라 믿으며...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를 사랑하신 그분 사랑에 내가 모르던 진리를 알게 하심에 기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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