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모쌤 손정화 Jun 25. 2024

여보, 지금 들어가요!

사춘기 아들이 엄마 귀가 시간 신경 쓰는 것처럼!

평일 디지털 튜터로 학교에 출근하는 나는 이번 학기 화요일에는 학교 일정이 없다.  

복지관 수업이 있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강의가 들어오면 거의 화요일로 일정을 잡는다.

복지관 한 타임 수업이 끝나서 집에 오면 12시 30분!

두 타임이 연속으로 있는 날도 있었는데 그런 때는 집에 오면 2시!

복지관 수업 후 어린이집 부모교육이 있는 날은 집에 오면 4시! 5시!

이렇게 화요일 귀가 시간은 자꾸만 바뀐다.

오늘 복지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남편의 말이 들렸다.

"화요일에는 귀가 시간이 들쑥날쑥 지 마음대로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실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담고 왔다.

집을 비우면 남편이 술을 마시니까!

내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다가 나를 마주하지 않기를 바라며

"여보 지금 들어가요"

톡으로 알려주었다.

범행의 현장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철저하게 모르는 척 해주고 싶다.

그래야 남편이 지금 하고 있는 최소한의 생각이 이어질테니..


아침에 나와 집으로 들어간 시간까지 겨우 4시간인데 남편은 그 사이 막걸리를 두 병이나 마셨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 남편은 나 보라는 듯이 다 마신 막걸리병을 숫자 세기 좋게 가지런히 세워 놓았다.

내 몸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그게 내 마음인지, 정신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툭 떨어졌다.

발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집으로 들어갔고 그때 들려온 남편의 말이었다.

마치 사춘기 아이들이 평소에는 말 한마디 곱게 안 하다가 엄마가 외출했을 때 "엄마 언제 와?" 하고 톡이나 전화로 물어보는 것처럼 남편은 외출한 나의 귀가 시간이 정확하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어제는 학교 개교기념일이라 출근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나와 함께 있는 동안 술을 찾지 않았다.

밤에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듣는 강의가 있어서 잠시 집을 비웠다.

돌아와 보니 남편은 내가 없는 사이 술을 마셨다.

그때도 마신 술 병이 집 앞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여보 나 왔어요"

"일찍 왔네!"

내가 들어오기 바로 전에 일을 해치운 걸까?


"내일 화요일이잖아! 그럼 당신은 내일도 쉬는 거야?"

"내일은 복지관에 가야죠!"

"화요일에는 당신 집에 오는 시간이 매 번 달라지더라"


남편은 신생아에서 유초등 기를 거쳐 사춘기에 온 것이 맞는듯하다.

엄마가 주는 것만, 사주는 것만 먹다가 이제 자신이 스스로 뭐든 해보려고 하는 아이같다.  

아직 돈 개념 모르는 아이에게 필요할 때만 딱 그만큼 돈을 주어서 거스름돈까지 받는 것처럼 그동안 나도 남편에게 철저히 술을 봉쇄하기 위해 아이에게 필요한 돈 주듯이 했었다.

용돈을 받은 사춘기 아이가 자기 마음대로 용돈을 쓰는 것처럼 어디에서 생겼는지 모르는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고 있다.

아이를 믿어주는 엄마처럼 나도 남편을 믿고 바라봐 준다.


이제 남편은 전과는 다르게 술을 마신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스스로 정하고(집에서 마시지 않는 것)

최소한의 배려를 한다(내 앞에서, 내가 있을 때에는 마시지 않는다)


아직도 하루가 지나가려면 6시간이나 남았다.

제발 남편이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와야겠다" "쓰레기나 버리고 와야겠다" 하며 나가는 시간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있다 하더라도 그 정도의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려 한다.

전에는 그 정도의 생각도 안 했으니까!

우리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이 돈은 어디에 써야 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