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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모쌤 손정화 Jun 21. 2024

아기가 된 사람

이제 사춘기가 된 사람

"여보! 당신 신생아야? 먹고 자고 먹고 자고만 하게?"

이 말은 사실 틀렸었다.

남편은 먹고 자고 먹고 자고는 맞는데 두 번 먹고 두 번 자고 일을 하러 나갔다.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퇴근을 하고, 남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출근을 하니 출근하는 길에 만나는 남편은 늘 초췌하고, 배고프고, 기진맥진하며, 힘들어 보였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남편은 퇴근길이라는 것을!

술 한 잔 마시고 왔어도 퇴근길에 동료들과 술 한 잔 하는 일반인들과 다를 것 없는 정상이었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남들 출근하는 활기찬 아침에 술이 거나하게 취해 들어오는 남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퇴근길에 술 한잔하고 들어와 집에서도 한잔 하고 자려는 모습을 검은색 안경을 끼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칼을 휘두르듯 말을 휘둘렀다.

"당신 지금 제정신 아니야"

"이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해?"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내 칼에 맞아 남편은 일어나지 못하는 병사가 되어 내 말대로 제정신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낙인찍었고! 가스라이팅 당하듯 본인도 그걸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린 조금씩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만 내려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마음을 주셨다.

'네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네 오라비가 살아있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죽었다고만 생각한 남편이었는데 하나님은 그도 내 자녀이니 네가 함부로 죽었다 하지 말라고! 살아있으니 살아있는 존재로 대하라고! 강한 마음을 주셨다.


그 무렵 남편의 형편없는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 정신이 좀 돌아왔을 때 보여주겠노라며 핸드폰을 세워놓고 남편의 퇴근 후 모습을 촬영했다. 어느 정도 촬영이 끝났을 무렵 확인하고 보여주려고 영상을 보던 나는 그만 휴대폰 화면 속 악마의 모습을 보았다.

분명 남편의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을 보려 한 것이었는데 영상속에는 남편을 잡아먹으려는 듯이 노려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고, 정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차디차고 매몰찬 말을 쏟아내는 한 여자가 있었다. 며칠 전 TV에서 보았던 문제 가정의 문제 아내의 모습과도 너무나 닮은 내 모습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남편을 대하는 내가 변하고, 그래서 남편이 변하고, 다시 내가 변하고, 또 남편이 변하는 이 사이클이 시작된 것이!

한 걸음 한 걸음 아주 아주 천천히 우리는 변하고 변했다.


신생아 같았던 사람이 돌쟁이가 되고, 미운 네 살 같더니 유초등학생 기를 지나 이제 뭐든 스스로 하려고 하는, 참견하지 말라고 하는 사춘기 중학생 같아졌다.


남편! 얼른 커! 그때까지 간아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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