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의 나라 독일에서 소고기를 해부하다
독일. 참 건강해 보이는 나라다. 어딜가나 친환경, 무농약 식재료들이 넘쳐난다. "Bio"라는 말은 너무 친숙한 친구가 되었다. 채식주의자도 많아서 웬만한 레스토랑에서는 베지테리언 메뉴가 있는 것을 당연하게 느낀다. 하지만 이 곳 독일은 고기의 나라다. 가공육의 대장급인 소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양, 토끼, 사슴, 칠면조, 캥거루 등 우리에겐 생소한 고기들도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또한 독일의 유명 음식들은 모두 고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같이 식문화가 고도로 발달된 나라에서 살던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바로 "정형"방식과 요리법이다. 내가 다년간 경험한 독일의 육식문화는 단순했다. 빨간 고기 덩어리를 부드러운 정도에 따라 나눠서 굽거나 찌거나 삶는다. 첫 번째로 빨간 고기 덩어리란 것은 지방 보다는 단백질의 붉은 살코기를 진짜 고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고기에 변형을 가하지 않고 대개의 경우 통으로 요리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첫 번째 문제는 취향차이라고 이해해볼 수도 있다. 또 마블링으로 등급을 매기는 우리의 방식이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두 번째에서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이 덩어리 문화 때문에 고기부위가 우리나라처럼 세분화되어 있지 않다.
1. 목심(Rinderhals, Nacken)
2. 갈비(Querrippe)
3. 양지머리(Rinderbrust)
4. 목심(Fehlrippe, 7-bone steak)
5. 등심(Hoherippe+entrecote)
6. 채끝(Roastbeef)
7. 안심(rinderfilet)
8. 갈비(Spannrippe, Querrippe)
9. 양지(Dünnung)
10. 사태(Schulter, Bug)
11. 앞다리(Oberschale)
12. 양지복근(Flank steak)
13. 우둔살(Hüfte, Tafelspitz)
14. 사태, 설도(Hesse)
이렇게 총 14분할이다. 가끔 레스토랑에서 뽈살같은 특수한 부위를 취급하기도 하지만 정육점에서는 찾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처럼 안창살, 부채살, 제비추리, 업진살 등의 특수부위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정말 가끔 백화점 등의 정육점에서 부채살을 팔기는 한다. 그게 다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것은 철저히 작업자의 편의에 맞춰져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얇게 썬 고기가 흔한 한국과는 달리 차돌박이나 우삼겹 등은 덩어리고기를 찾아도 먹기가 힘들다. 얇게 썰어달라거나 특정 부위를 도려내 달라고하면 대개의 경우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거나(결코 인종차별은 아니다) 많은 설명을 요한다. 필자의 경우 한 단골 정육점에서 기계로 삼겹살을 알아서 썰어주기까지 몇 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지극히 한국인의 시각에서 본 것이다. 독일 가정에서는 요리할 때 팬프라잉보다는 오븐을 주로 이용한다. 그렇기에 덩어리 고기를 요리하기 쉽다. 오븐 문화가 만든 독일의 정형 문화인지, 독일의 노동자 편의 위주의 정형 문화가 만든 오븐 문화인지 선후관계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특히 소고기의 경우 대부분 통째로 스테이크를 구워서 먹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부드러운 등심, 안심만을 스테이크로 하는 한국과는 달리 목심, 우둔과 같은 상대적으로 질긴 부위들도 모두 스테이크로 굽는다. 이는 독일 소들은 마블링이 거의 없어 결코 로스구이로는 맛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직화로 구워도 얇은 고기에서는 기름이 떨어지지 않고 단백질이 그대로 굳어버린다. 퍽퍽한 살을 그냥 익혀먹는 느낌이랄까? 불맛이 거의 나지않고 육즙은 말라버려서 단단하고 맛이 없어진다. 반면 스테이크로 구으면 육즙이 안에서 맴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촉촉하다. 난 이런 이유로 독일에 로스구이 문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그리워한다. 한국의 강력한 후드가 함께하는 참숯숯불구이를 말이다. 오죽하면 필자의 블로그에 들어오는 가장 많은 유입키워드가 "프랑크푸르트 고기"이겠는가?
이때까지 한국과 비교하며 단점만 많이 얘기한 것 같은데 독일 소고기 요리의 강점은 소스에 졸인 것에 있다. 특히 그 소스가 흑맥주(dunkel, 둥켈)를 졸여 만든 것이라면 이루 말할 것도 없다. 흑맥주 특유의 카라멜, 훈연향과 홉의 쌉싸름함이 어우러져 소고기와 아주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가장 맛있게 먹은 독일 소고기 요리는 뮌헨의 기차역 앞에있는 파울라너에서 먹은 와인 소스에 졸인 숫소뽈살요리였다.
이렇게 맛있는 독일 소고기 요리에도 불구하고 향수병이 생긴다면,
이 험난한 독일에서 고기하기.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가?
1. 발품을 팔아라. 어딘 가에는 당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개인 정육점을 단골로 만들어라.
2. 두려움을 버려라. 실패가 두려워 늘 같은 등심(entrecote)을 고르고 있진 않은가? Flank, skirt steak가 보인다면 얼른 집어보자. 결 반대로 잘 자르면 치마살이 보인다. 갈비대가 보이면 과감히 칼을 집어들고 포를 떠보자. 정말 소갈비가 된다.
3. 인터넷 배송을 이용하자.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하면 좀 더 마블링이 있는 미국산이나 심지어 고베규도 판다.
3. 소고기는 결국 불에 구워야한다. 비록 참숯처럼 향이 그득한 숯은 아니지만 가스그릴기도 좋다. 장비를 구매하자. 아마존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독일에서 고기하기. 참으로 험난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