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뒷다리의 화려한 변신은 "유죄"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에 있다. 이베리아는 그리스인들이 이 곳에 살던 원주민을 Ἰβηρία(Iviría)라고 부르던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원주돈(?)을 바로 이베리코라고 부른다. 이 이베리코는 흑돼지이고 특히 발굽이 검은색인 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유명세를 타는 돼지 종이지만 이 녀석도 여타 돼지들과 똑같이 일명 후지라고 불리는 뒷다리살은 역시나 질기고 맛이 없었다. 그런데 이 후지 녀석은 맛도 별로인 주제에 중량은 얼마나 차지하는지 전체 중량 중 21%가 바로 뒷다리살이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많이 소비하는 금겹살은 겨우 13%도 채 안된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이 부위를 포기하기 싫었던 것은 우리나 지구 반대편 스페인 사람들이나 같았다.
우리는 얇게 저며서 양념을 해서 먹는 방법을 택했다. 아무리 질긴 고기라도 종잇장처럼 얇게 저미면 질기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양념마저 더하면 연육 작용으로 인해 더욱 부드러워진다. 우리가 저렴하게 먹는 제육볶음이나 불고기는 이런 질긴 부위들로 만들어진다.
반면에 스페인 사람들은 숙성을 택했다. 숙성은 감칠맛을 만든다. 이 경우에는 단백질이 분해되어 아미노산이 된다. 질기던 고기도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아무런 양념 없이도 감칠맛이 돈다. 하지만 오랜 숙성을 위해서는 높은 염도가 필요하기에 소금에 절여진다. 이 소금의 짠맛 때문에 결국 하몽도 얇아져야 한다. 이런 멋진 아이디어로 골칫덩이 뒷다리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깃덩어리 "하몬"이 되었다.
첫 번째로 역시나 이들의 주식인 "빵"과 함께 샌드위치 형태로 먹는다. 이때 하몬의 역할은 그 풍미보다는 전체 샌드위치의 간을 맞추는 역할이다. 그래서 보통 가장 낮은 등급인 하몬 세라노(serrano) 등급을 기계로 잘라서 사용한다.
그냥 아무 하몬 샌드위치를 먹어도 맛있지만... 짠맛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맛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정답은 바로 신맛. 짠맛은 신맛과 중화되어 미각에게 훌륭한 밸런스를 선사한다. 이 밸런스는 "토마토"가 맞춘다. 토마토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워서 메마른 빵의 표면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이 조합은 평범하지만 매우 특별해서 이름마저 고유명사처럼 굳어버렸는데 마른 빵에 토마토를 으깨어 바른 것을 "판 콘 토마테(Pan con tomate)"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이 샌드위치는 완성된 게 아니다. 토마토와 하몬이 맛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조화롭지만 식감과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의 형태에서는 조금 엇박자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린 이 빵 위에 올리브 오일까지 적셔준다. 그럼 이 묘한 유질감이 하몽과 토마토를 자연스럽게 섞어준다. 좋은 올리브 오일을 뿌리면 따라오는 상큼한 과실 향과 스파이스는 보너스랄까.
두 번째로는 각종 타파스와 파스타에 간과 풍미를 더하는 역할이다. 사실 첫 번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점은 하몬은 생햄이지만 이 경우는 오일에 튀기듯이 구워졌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까? 베이컨의 사용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하몬 특유의 육향을 오일에 녹여내기에 특별하다. 생햄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렇게라도 조금씩 먹어보길 권한다. 머지않아 하몬을 손에 쥐고 뜯고 있는 당신을 보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는 하몬 그 자체이다.
개인적으로는 요리의 일부보다 하몬 그 자체가 요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때부터는 하몬의 퀄리티가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된다. 슈퍼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팩에 든 하몬은 감동을 선사하기는커녕 생햄에 대한 거부감만 증폭시킨다. 그래서 우린 하몬의 등급을 알아둬야 한다. Serrano, Cebo, Cebo de campo, Bellota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름이 어렵지만 모두를 알아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몬을 요리의 일부로서 먹을 때는 그 하몬이 무슨 등급인지는 사실 큰 상관도 없거니와 대개의 경우 가장 낮은 Serrano(이베리코가 아닌 일반 백돼지로 만든 하몬)를 쓸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높은 등급인 Bellota(베요타)만 기억해 두면 된다. 이 등급부터는 하얀 점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는 단백질이 분해되어 아미노산이 된 결정체이므로 많고 굵을수록 맛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5년 정도 숙성한 베요타라면 이루 말할 필요가 없다.
잡설이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스페인에 가면 하몬을 먹어라.
손으로 집어서 입 안에 가져다 넣는 순간 맛의 축제가 열릴 테니까.
아참 빼먹을 뻔했는데 꼭 스페인의 레드와인이랑 마셔라. 특히 리에라 델 두에로에서 만든 와인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