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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Mar 15. 2024

프리지아 꽃은 시들지 않는다

신변잡기



 아내가 희미한 웃음으로 문 앞에 나와 나를 배웅하고 있다. 연휴를 지냈으니 내일부터 다시 출근을 해야 했다.


"식사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들어! 올라간다!"

"걱정 마! 챙겨 먹을게!"


 작년 8월부터이니 벌써 반년을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아내는 딸아이와 세종시에, 나는 인천의 집으로 올라간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하더니, 이것도 예행연습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입원 후 두어 달 동안의 병상생활과 치료, 수술 등으로 아직 외래를 다니니, 입원했던 병원이 가까운 딸아이 집이 여러모로 편하기에 아내는 세종에 머물고 있다. 정오의 시간에 맞추어 버스에 오르니 늦추위의 봄을 시샘하듯 불던 바람도, 차창밖으로 산야 둔덕의 연초록 새싹들이 봄의 정령인 듯 솟아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나 보다.


 유난히 길고 긴 겨울의 잔상인 찬바람도 어느덧 약간은 무뎌진 듯하다. 시간은 벌써 삼월의 중반으로 흐르고 있었다. 내려올 때마다 아내의 손에 자꾸 눈이 가는 건, 안쓰러운 지난 시간의 여울목에서 고왔던 손이 수술로 인한 창상(創傷)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무려 다섯 차례의 손수술을 받았다. 당뇨로 인한 세균성 부종은 끈질기게도 뽀빠이의 오른팔처럼 아내의 팔에 부풀어 꺼질 줄 몰랐다. 두어 달 입원 당시에 다섯 차례의 수술을 받는 동안 을씨년스러운 대기실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었다.


 보험사에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다. 손해사정인은 수술급여금을 너무 명확히 약관에 명시한 탓에 자사의 손해가 크다고 했다. 유일한 그들의 조자룡 헌 칼은 만성질환인 당뇨 자체를 없애는 수술은 아니란 공허한 말들 뿐이었다. 당뇨자체를 없애는 수술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받게 하고 싶다. 그런데 만성질환이라는 명칭은 왜 붙였을까?........, 신경을 제거한 아내의 약지 손가락은 점점 마네킹의 손가락을 닮아가고 있었다.


 보험사의 위촉직원 신분인 손해사정인은 어쩔 때는 당당하게 통보하는 식이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애원조의 자기 푸념을 하고는 하였다. 모두 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니 힐난할 수 없었다. 아직 소송까지 가지는 않았으나 보험사의 행태가 열불이 나고는 한다.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일고는 하지만, 과연 우리 뜻대로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생기곤 한다. 지난날 돈에 관한 다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 두근거리는 가슴이 가소로웠다. 자본의 세계는 흥분하는 놈이 필연적으로 지는 게임이다. 얼음장같이 흐르는 혈액이 있는 듯 고요한 말투로 상대를 지긋이 쏘아보는 자신감이 나에겐 부족했다. 그랬어야 했지만 늘 가슴이 뛰었다........,


 모든 기능이 멈추어진 아내의 손가락 둘은 손바닥의 고랑을 지나 구부러져, 방아쇠를 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엄지와 검지가 있어 일상엔 큰 무리가 없다고 안도해야 하나? 아내는 당수치 조절에 나름 신경을 많이 쓰는 눈치였다. 내분비내과 진료 의사에게 들은 당화혈색소가 정상치에 가까우리만치 좋아졌다는 말을 들은 후, 아이처럼 좋아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체중도 너무 빠져 보이고, 전과 같은 활기가 없어 보이니 여전히 근심스러울 뿐이다.


 아내는 유난히 노란색을 좋아한다. 봄의 정령인 개나리가 길가에 흐드러지면 한참을 뜨질 못할 정도로 감흥을 받고는 한다. 어느 가을날 퇴근을 하다가 길가에 꽃무더기를 파는 노점에서 프리지아 꽃을 한 묶음 사서 집을 간 적이 있었다. 딸과 아내가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프리지아는 순진하면서 어딘지 천진난만한 연상이 되고는 한다. 딸아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졸업을 축하할 때도 아내는 프리지어를 안겨주었다. 아이의 새로운 시작을 프리지아는 가장 잘 응원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젊은 날 몇 번의 이직 후에 지금의 직장에 안착하여 27년여를 근무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요즘 같은 시절에 정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뒷바라지가 있기에 가능했다. 특히 아내는 몇 번의 입원에 따른 나를 지극정성으로 간병을 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돌봐주었다. 이제는  내가 아내의 건강을 돌봐야 한다. 부부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당연하다지만 그리 쉬운 일도 아닌 터에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해본다.


 딸아이는 택배로 주방 앞 벽 쪽에 식물 재배기를 들여다 놓았다. 제 엄마에게 직접 수경재배라도 하여 취미도 살리고, 무공해 채소도 길러 건강을 되찾게 도울 심산인가 보다. 딸애는 퇴근 후엔 유난히 화분의 식물들에게 붙어살고는 한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무심한 듯 바라보았으나, 날짜가 바뀌어 어느 날 문득 바라보자면 소담스러운 화분의 줄기며 꽃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딸애도 그런 식물들이 자랑스러운 듯 자신의 돌봄이 결실을 피워내는데 관심을 쏟았다. 좋은 취미인 듯싶었다.


 무엇이든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원인이 없는 결과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본다. 당장의 급한 생각에 이런저런 일들을 벌이는 것은 결국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딸아이는 프리지아 구근을 애지중지하며 양파망에 넣고는 베란다 그늘에 보관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이후 어디선가 투명화분을 구해 흙갈이를 하고 실내에서 부족한 광합성을 위해 LED조명을 설치하고, 거치대에는 작은 선풍기를 달아 통풍에 까지 신경을 쓴다. 일주일 후 내려가니 현관에는 비료인지 분갈이용 배양토 자루가 보인다. 거실로 들어서자 3층 식물선반의 화분에서는 노란 프리지아가 푸른 봉오리들 사이로 피어나기 시작을 했다.


 어디에 잠시 갔는지 아무도 없는 집안 거실에서 나는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딸아이의 정성이 꽃을 피워 내듯이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서야 결실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프리지아는 결코 시들지 않는다. 실뿌리를 내밀고 생명은 흙에 자신의 의지를 박아 넣는다. 샛노란 꽃잎을 피우기까지 그렇게 정성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삼월이 되었으니 딸애는 또다시 분갈이를 할 것이다. 나도 준비한 것들을 정리해 꽃을 피우도록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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