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레스임 May 28. 2023

방송통신대, 기한 내 기어이 졸업하기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나이가 오십을 넘기고 보니  빈 쭉정이가 된 것 같았다. 뭔가 채워야 하는데 어울려 술이나 먹으러 다녔다. 거기에 회사의 노조 관련 협의회장 선거에서 한 표 차로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대미지가 있었다. ‘에라! 공부나 하자’하는 심정으로 원서를 넣었다. 그것도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했다. 미달이니 당연히 합격이었다. OT(오리엔테이션)에 참석을 했다. 온라인 대학인 만큼 조금은 복잡한 수강 절차 등을 주워듣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학과 학생회장이라는 중년여자분이 단상에 서더니, 학생회를 소개하고는 임원을 뽑겠다는 말에 바짝 긴장했다. 학생회 임원은 거의 다 졸업한다는 말에 솔깃했다. 사실 미달이니 들어왔지, 실력검증은 아무것도 없었다. 10명 중 1명 만이 4년 내 졸업한다는 말에 졸업은 쉬운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내 자리로 와, 권유하기에 덜컥하겠다고 했다.


국어국문학과 1학년 대표가 됐다. 임원진 구성은 다채로웠다. 총무, 문화체육, 정책, 학습, 복지, 편집, 홍보 등등 분과별로 모두 차장이라고 했다. 내가 부대표 여성 학우 한 분과 이 모든 걸 총괄한다고 했다. 졸지에 엄청난 자리에 앉아버렸다. 2, 3학년이 그위로 국장이라고 하며, 그 위에는 실무와 수석 부회장이 있고 정점에는 학과 회장이 있었다.


'대표님' 소리가 싫지는 않았다. 온라인 대학이라지만 학생회 임원은 자주 학교에 가야 했다. 마침 직장 근처 걸어서 십분 거리에 학교가 있어, 별 부담감은 없었다. 학생회에서 준비하는 MT, LT, 학술제 행사, 체전, 정지용 시인 기념행사 등 뭐, 온갖 행사는 다 학생회 소관이었다. 입학식에 가보니 거의 모든 순서가 학생회에 일임돼 있어 눈치는 챘었다.


'공부는 언제 하나'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됐다. 반면 도움 되는 것도 많았다. 무엇이든 물어볼 선배가 많아, 중간고사 준비와 기말대비 요령 등 분명히 도움이 많이 됐다. 그리고 같은 학우(學友)라고 부르는 동급생 중에는 현역 시인과 수필가 등이 있어,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강원도 강촌으로 MT를 갔다. 모든 학년과 동문선배까지 참석 인원이 40여 명이 되니 빌린 펜션이 시끌벅적했다. 밤이 되니 캠프파이어에 불길이 오르고, 국악전공을 한 선배의 우리 가락 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나이 스물에 하는 경험을 오십 줄에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중간평가 기간에 학우들이 5/1 정도가 훅 줄었다. 한 학기 6과목 18학점 받기가 그리 녹녹지 않았다.  리포트(소논문)에 시달리다, 한숨 돌릴만하니 출석수업(토요일부터 시작해 일요일은 9시간 풀 강의, 월요일~수요일까지 저녁에 3시간씩) 직 후, 바로 주관식 시험은 조금은 힘들었다. 나도 그런데 일하랴, 공부하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방송대는 다녔다는 사람은 많지만, 졸업했다는 사람 보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기말시험은 더 가관이다. 중간시험 일부분을 제외한 모든 과목을 25문제씩 150문제 4지선다형 문제를 풀어야 하니, 열람실에 틀어박혀 끙끙거려야 했다. 국문학이란 말을 선배들이 싫어한 이유를 짐작했다. 처음엔 의아했으나 '국어국문학' 명칭의 국어는 문법을 말한다. 즉, 고문(古文)을 비롯해 모든 문법 관련 학문이고, 문학도 낭만하고는 거리가 먼 비평 등 복잡 난해 한 과목이 많았다. 아득히 생각나는 고등학생 때 그렇게 해도 점수가 안 오르는 과목이 사실은 국어였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기말시험이 끝나고 파악해 보니 절반 정도의 학우가 사라졌다. 정신없는 한 학기였다. 10명 중 1명만 졸업한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2학기 준비를 바로 해야 했다. 선행학습을 해서라도 조금은 수월하게 시작을 하고 싶었다. 학생회 일도 나름 한다고 열심히 했었다.


2학기부터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학생회 일도 조금은 즐기게 되었다. 그런데 3, 4학년 간에 균열이 감지되었다. 차기 회장을 놓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더니, 학술제를 다녀와서 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사실 20대 초의 나이들도 아니고 40대~60대까지 고루 섞인 학우들이었다. 사회에선 나름 한가락쯤 하는 분들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분들이 다수였다. 나에게 어느 편을 들 거냐고 다그쳤다. 2학기 기말이 끝날 때쯤 나는 학생회를 탈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에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더 이상 엮이다가는 힘들어 보였다. 사실 일부를 제외하고는 4학년까지 학생회 임원을 하면 졸업이 힘들었다. 총학생회 회의에 한 번 침석 할 일이 있어 가보니 내 생각은 명확해졌다. 스터디 참여만 같은 학년끼리 하다가 3학년부터는 완전히 학생회에서 탈퇴했다.


국어국문학 공부가 쉽지는 않았으나, 나와는 어느 정도 맞는 부분이 있어 전액 장학금도 몇 번 받았다. 내친김에 밀어붙여 공부만 열중하고 교내 문학상 도전도 병행했다. 방송대 공부는 하는 김에 끝내야 한다. 1~2년의 휴학 후 다시 하겠다는 학우들은 그 후 보질 못했다. 후배님들 중 잠실체육관에서 하는 졸업식에 가고 싶다면 필수적으로 밀어붙여 끝내시길 바란다.


(공부 자료는 아래 주소에서 가입 찾으면 편리함)

https://cafe.daum.net/apple010



그 외 이야기들


지난달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교명변경을 위한 공모전을 진행했었다. 졸업생으로서 '방통대'라는 말은 듣기 싫었다. 어디서건 방송대라고 말하지 '통'자는 붙이지 않는다. 지금의 고성환 총장님이 바로 국어국문학과 문법과목 교수님이시라 아마도 재임기간 동안 바꿔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영문명은 Korea national open university로 'KNOU'의 약자를 쓰는 방송대는 서울대학교 부설로 시작한 국립원격대학이다. 국민 평생교육을 기치로 온라인 대학 국가 예산의 80%를 방송대가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한 학기 등록금이 35만 원 정도인 것이다.


나이 들어 대학 졸업장이 무슨 필요가 있냐고 나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여정에서 사유의 힘이 길러졌다. 국문과를 졸업하고 사회복지학과로 편입, 관련 자격을 취득하고 졸업한 지 두해 전이다. 6년의 시간이 꿈같이 흘러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직 충만하다. 이렇게 글을 쓰는 모습도, 그 시간 속의 또 다른 자아가 아직 남은 나의 가능성을 노크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다. 공부하고 생각해 온 모든 것들을 인생 2막에서 멋들어지게 활용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례(葬禮)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