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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Aug 29. 2023

까치의 복수

내가 왜 거기 있었을까



점심시간, 외곽계단으로 회관 2층으로 올라간다. 중복 여름의 태양은 여전히 뜨겁다. 마로니에 나무 위가 소란스럽다. 흡연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에 도착,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나무 위의 소란은 까치가 주인공이었다. 워낙에 많은 개체가 있어 그저 그러려니 했다.


볼일을 보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는데, 새끼 까치 한 마리가 중간 계단 위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꽁지 깃털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소(離巢)할 시기도 아닌 것 같았다. 사람이나 축생은 늘 청소년기가 문제인 것 같다. 조금만 더 둥지에서 어미의 보살핌을 받으면 날아가련만,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참기 힘들었나 보다.


대리석 계단에 놔두면 지쳐 죽을 것 같았다. 어미는 여전히 나무 위 둥지 옆에서 꽥꽥대고, 녀석도 쉽사리 손으로 집기엔 너무 컸다. 내가 둥지로 올려 줄순 없으니 계단 옆의 화단으로 던져줄 심산이었다. 가까스로 손으로 잡아 바로 옆의 화단으로 새끼 까치를 옮겨주었다.

'이제 됐지....., 나머진 네가 어떻게 해봐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내려가는데 뭔가 내 머리를 치면서 날아갔다. 까치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지들 새끼 구하려고 하기 힘든 일까지 해준 나를 왜 이리 홀대하는 거지? 아님 아예 내가 둥지까지 책임지고 옮겨달란 의미인가? 참으로 기가 막혔다. 계단을 내려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 까치들은 마로니에 가지 위에서 나를 노려보며 "깍.. 깍" 거리고 있었다.


오후 일정이 있는 동안 까치의 일은 잊어버렸다. 퇴근 무렵 밖으로 나가는데 또 내 머리 뒤통수를 "퍽!"치고 날아간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옆의 동료들은 놔두고 나만 정조준하여 테러를 가하는 것이 아닌가. 히치콕의 영화 '새'가 생각났다. 마로니에 나무를 돌아서 갈 때까지 그놈은 내 뒤통수를 노리고 저공비행으로 스치듯 지나갔다. 어이가 없었다.


'박 씨는 못 물어다 줄지언정, 행패를 부려!'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하니 자기들 새끼를 풀숲에 던져 준 놈은 분명히 나였다. 내가 너무 인간의 사고만 한 것일까? 새의 시야로 보자면 부모인 그들이 무슨 계획이 있을 것인데, 내가 불쑥 나타나 새끼를 구하기 힘든 화단으로 넣으니 오히려 화가 날 법도 하다. 별 희한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출근길에 전철에서 내려 하루 일정을 생각하며 걷고 있었다. 인도를 따라 어제 그 문제의 마로니에 나무의 까치 둥지를 지날 때쯤, 또..., "퍽" 어제의 테러가 다시 시작되었다. 같이 걷던 행인들도 놀란 눈치다. 머리를 감싸 쥐고 나살려라 뛰었다. 회관 문으로 들어갈 때까지 까치는 계속 저공비행으로 나를 위협했다.


누구에게 말도 못 하겠고, 살면서 별일을 다 겪는다 생각했다. 오전의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살며시 나가봤다. 나무 위의 까치가 안보였다. 이젠 끝났겠거니 생각하고 계단으로 접근하는데....., 다시...., 깍깍 거리는 소리가 나자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무 위를 보니 녀석들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 안 끝난 모양이다. 어떻게든 나에게 해코지를 할 참인가 보다. 도로 냉큼 사무실로 돌아갔다. 누가 까치가 울면 반가운 사람이 온다는 등의 얘기를 지어냈는지 모르겠다. 까치가 울면 어디선가 나를 공격하겠다는 선전포고로 들렸다. 퇴근할 때도 나는 다들 나가는 문을 피해 정반대 쪽 문으로 살며시 도망갔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길에 이젠 의식적으로 나무 위의 까치부터 살핀다. 아무 조짐이 없어 안심하고 들어서는데, 환경미화 여사님이 삽으로 뭔가를 떠서 중얼거리며 나온다.


"새끼가 거기 틀어박혀 죽어있으니, 그 난리를 쳤었네! 쯧쯧!"


내가 화단에 던져놓은 까치 새끼로 보였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그냥 놔두면 어미가 채서 둥지로 옮길 수도 있었던 건가? 내가 괜한 짓을 해서 새끼가 죽은 것 같았다.

더 이상은 까치가 울지도, 저공비행으로 공격도 하지 않는다. 내려다보고 있다가 하늘로 날아갔다.


 둥지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모양이다. 오후가 되어도 나뭇가지 사이 둥지로는 더 이상 까치가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이나 나에게 울부짖던 까치의 울음이 더는 들리지 않는다. 미물일지언정 자기 새끼 생각하는 마음은 지극해 그토록 애달프게 울었나 보다. 나의 단순한 생각이 오히려 까치에게는 재앙이었다는 생각이 미친다.



모성(母性)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종(種)의 생존과 번성은 전적으로 모성에 달렸다. 그것이 없었다면 이미 멸종해 버렸을 일이다. 아무리 간단해 보여도 생각을 좀 해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공원을 가로질러 지하철 타러 가는 길, 이번엔 직박구리 새끼가 길바닥에 버둥거리며 나와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비켜서 지나갔다. 어미새가 근처의 관목 가지에서 울고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뒤돌아 봤다. 들고양이 한 마리가 잽싸게 지나가고, 어미새는 미련 없이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각자의 영역이 있다. 도심이지만 자연의 생과 사가 어우러진 삶이 내 주위 어느 곳에나 있었다.  8월의 햇볕은 여전히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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