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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Aug 17. 2023

장례(葬禮)

장례절차에 관한 소회(所懷)



 죽음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가족의 죽음이 생경한 것은 때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병을 앓는 식구가 있어도 이별의 순간은 상상이 되질 않는다.


 늘 하게 되는 생각은 완치가 되는 희망적인 상상이 머릿속 깊이 인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이 비관을 몰아내기보다는 두려움이 연관된 생각을 억누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죽음은 전혀 의외의 문으로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든다. 오래지 않은 어머니의 죽음에서 나는 그것을 느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은 살아있는 육신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 정서와의 이별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의 장례문화는 이(異) 민족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삼일장을 치르는 동안 나름의 소회를 적어보고자 한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큰 차이를 낳기에......,




새벽 두 시, 전화가 온다. 분명히 여동생 일 것이다. 선뜻 받기가 망설여진다. 어머니의 부음 소식이라고 생각되었다. 진동으로 맞춰진 휴대전화는 새벽 두 시의 정적을 깨고 온 방안을 뒤흔들고 있었다.


겨우 동생과 통화를 시작하니 울음소리부터 들린다. 가슴이 내려앉는 소리가 쿵쿵 들려왔다. "엄마 돌아가셨어!!"

이 한마디에 나는 모든 게 백지장처럼 허옇게 보였다.


모태의 시간 이후로 의식을 하든 안 하든 어머니는 내 존재의 귀향점이었다.

모든 끈이 풀어져 버린 느낌이었다.

아득한 정신을 수습하고 나니, 운명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빨리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져 왔다.


밖을 나서니 성탄절 다음날의 새벽 겨울바람은 매섭게 바람을 휘몰아 나의 뺨을 후려치며 지나가고 있었다. 가는 내내 머릿속은 온통 회한과 장례절차에 관한 생각이 뒤엉켜 있었다.


동생의 집에 도착을 하니, 어머니의 혼이 가뭇없이 나간 육신은 마치 모든 액체가 빠진 고체 덩어리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에겐 애달픈 분이었건만, 왜 그리 낯선 공간의 다른 이로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장례식장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동안, 앞으로 치를 일들이 신호등처럼 간헐적으로 깜빡였다. 수시(收屍)는 고인을 안치하는 일이다. 도착해 사무실로 가니 공의(公醫)라는 의사에게 사망진단서부터 발급받으라 채근한다. 비용은 선급이고 현금이라고 했다. 벌써 나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계산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빈소설치에 따질 것이 많았다. 특실이냐, 일반실이냐 부터 정하고, 문상객들이 조문하는 장소의 꽃(조화) 장식은 어느 것으로 할 것인가를 정한다. 상주인 내 생각과는 다르게 모든 게 사무적이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장례식장의 경우(daum)

요즘은 우후죽순처럼 상조회사들이 많아져 장례식에 대한 부담은 많이 줄었다. 그러나 상조회사를 선택하는 데 있어 주의할 것이 있다. 다달이 몇 만 원의 입금을 요구하는 상조회비를 굳이 낼 필요는 없다. 가입만으로도 받아주는 상조회사가 꽤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부의금이 들어오면 목돈으로 치르는 것이 상례화 된 마당에 할부금처럼 부담을 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장례식 첫날의 준비는 거의 정오가 지나고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전날 22~24시경에 돌아가시면 다음날 01시쯤으로 부고를 알리고, 준비를 천천히 하는 것이 상주입장에서 편할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을 봐도 그렇게 장례를 지내는 사람이 꽤 많이 있다. 하루를 아낄 수 있고 그리운 가족을 더 내 곁에 두고픈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다.


조문객을 받고 고인의 지난 행적에 관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문득 관계에 대한 고인의 행장(行狀)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사람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자각이 장례를 치르면서 알게 되었다. 경사(慶事)는 사정이 있으면 축의금으로 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조사(弔詞) 어지간하면 필히 참석하게 된다. 상주의 손을 잡아주고 고인을 추모해 주는 일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둘째 날 한낮에 염습(殮襲)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온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산자와 죽음저편의 고인은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 할머님의 장례 때 아들인 작은 아버지들은 도저히 못 보겠다고 다. 나와 어머님이 참석을 했다.

가족들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증거 해 주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정성껏 닦고, 삼베옷을 입히는 과정이 이승과 저승의 가림막을 세우는 의식처럼 경건하다.


저녁이 되자 첫날보다 많은 문상객이 몰려든다. 삼일장의 둘째 날은 상주와 남은 가족들을 정신없게 만든다. 너무 오랫동안 소원한 친인척들과의 대면이 건성으로 흘러가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조문객들이 들이닥치면 그런 생각 또한 사치란 걸 깨닫는다.


자정이 넘어서고 상객(喪客)들이 뜸해지면 한숨을 쉴 수 있다. 새벽에 나갈 상여와 셈을 치를 부조를 정리하고 쪽잠이라도 청해 본다. 생각처럼 잠은 오지 않았다. 몸은 피곤하지만 확실히 정신아래 하위계급이 맞는 것 같다.


매장풍습이 점차로 사라진 현실은 자연스레 화장의  문화로 대체되었다. 두어 시간의 기다림에 구차한 육신의 정화는 한 줌의 재로 흰 단지에 모셔진다.


 근처 봉안당으로 가는 길, 손으로 받든 단지의 어머님이 화기(火氣)때문인 줄은 알지만 당신의 온기가 아직은 남아있을 거라 믿고 싶어 진다. 겨우내 며칠동안 얼어버린 자식의 손을 따스이 쥐어주고픈 모정이리라......,


 산 사람은 하루면 이사를 마치지만 가신 분은 경계가 다르기에 삼일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머님을 또 다른 사자(死者)들이 사는 삼층 눈높이의 공동주택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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