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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Oct 02. 2023

나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손흥민 선수의 꿈



춘천의 공지천 유원지 축구장 골대 앞에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연습이 한창이다. 아버지의 행색은 누추했지만, 눈빛은 형형하게 살아있었다. 아들은 한창때의 개구쟁이로 보이나, 공을 찰 때면 웃음기가 사라지고 제법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골문을 향한 공은 다양한 궤적을 그리며 연신 그물을 출렁이게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공을 연신 아들에게 차 주었다. 한낮의 햇볕이 그들의 목덜미에 진득한 땀으로 적셔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느덧 석양이 의암호를 붉게 물들일 때까지 그들의 연습은 끝날 줄 몰랐다.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가며 차대는 아이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지고 있다. 초저녁의 한적한 시간을 호수의 낙조를 보고픈 사람들이 하나 둘 지날 때, 축구장 옆을 지나던 한 아주머니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신고해야 해! 저건 연습이 아니야! 애를 잡네 잡아!' 경찰에 전화를 건다. 아동학대 신고를 한 것이다. 사실 아이의 아버지 인상이 너무 일그러져 무섭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순찰차가 오고 신고를 받았기에 몇 가지 질문을 그들에게 하는 경찰에게 부자(父子)는 함박웃음으로 대답해 준다. 그날의 연습은 해프닝과 함께 끝났다. 하루 천여 개의 양발로 하는 슈팅연습은 다른 이들에게는 생소하면서 학대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축구선수였다. 그것도 프로구단에서 뛰는 선수였다. 하지만 심각한 부상이 찾아왔다. 눈물을 머금고 모든 걸 내려놓아야 했다. 축구는 그의 생에 모든 것이었다. 다른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결혼 후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공사장 막일에서부터 닥치는 대로 가족들 부양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나마 간간이 하는 몇 푼의 수고료뿐이지만 초. 중학교의 축구코칭일은 본업인양 신이 났다. 파릇한 아이들을 축구장에서 가르치는 일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곤 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있었다. 두 아들이 생겼으니 전보다 곱절로 일을 해야 했다. 돈이 늘 부족하지만 어느 사이 훌쩍 커진 아들은 그의 꿈과 소망이었을 것이다.



둘째 놈이 축구를 하고 싶다고 제아비에게 말한다. 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고 아비는 아들에게 묻는다. 초롱한 눈망울로 아들은 아버지에게 하겠다고 답했다. 아비는 글썽이며 아들을 껴안았다. 앞으로 펼쳐질 아들의 운명이 못내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가 지나온 그 길은 험난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비는 아들을 자기와 같은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기초부터 철저하게 가르치고, 남들에게 맡겨 혹사당하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했다.



아비는 자식의 그림자로 살아갈 뿐이어도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낀다. 주변의 손가락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는 서보지도 못한 꿈의 구장에서 아들은 휘젓고 뛰며, 세계인들이 탄성을 지를 그날이 그의 눈에는 이미 실루엣처럼 보였다. 모든 것은 그들 부자의 꿈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작은 소도시 춘천 의암호의 지류인 공지천에서 해가 저무는 줄 모르던 아버지와 아들의 꿈은 결국 이루어졌다.



2023년 10월 1일 이른 새벽, 리버풀과 토트넘 훗스퍼의 경기가 있었다. 무려 6년간 리버풀은 넘을 수없는 산맥과 같은 팀이었다. 단 한 번도 그동안 이겨본 적이 없었다. 등번호 7번의 아들인 SON은 심호흡을 해봤다. 이미 서른을 넘긴 그의 눈 속엔 지나온 날들이 오버랩되고 경기장 관중석에 눈을 들어 한편을 보니, 늘 그곳을 지키고 있는 아버지가 계셨다. 아들은 전날의 컨디션과는 달리 몸이 가뿐해졌다. '그래 이 순간을 즐겨보자!' 긴장이 사라지고 발끝이 오늘따라 부드럽다. 상대팀의 수비가 울창하여 속도로 모든 것을 제압해야 했다.



SON은 서너 명이 첩첩이 에워싸여 공의 근접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튀어나갈 준비를 하지만 확신은 없었다. 부주장 메디슨이 기막힌 패스를 윙어인 히살리송에게 건넨다. 이젠 그가 튀어야 할 순간이 왔다. 히살리송이 어제의 눈물을 뒤로하고 크로스 패스를 보냈다. SON은 연어처럼 튀어 올랐다. 그리고 부드럽게 발끝을 터치했다. 어떤 식의 슈팅도 허용 않고 신들린 듯이 모든 공을 받아내며 쳐내던 리버풀의 골키퍼 알리송은 순간 맥없이 그물로 향하는 공을 바라봐야 했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모든 것이다. 경기장 한쪽 구석에서 성치 않은 몸으로 기어이 골을 넣는 아들을 아비는 일렁이는 눈으로 바라다보았다. 공지천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어린아이는 세계인들의 꿈의 구장에서 한껏 뛰어올라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 한 장면에 경기장의 수만관중은 환호했다. 그렇게 그들 부자(父子)는 전설이 되어간다. 아직 무관의 제왕이라는 호칭이 손흥민에게 따라다닌다. 9 시즌째인 그에게 리그우승은 또 다른 도전이면서 하나의 염원일 것이다. 기어이 팀스포츠인 축구에서 마음을 모아 팀원들을 한데 묶어 주장으로서 그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진다.


아버지와 아들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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