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개조작업과 회관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벌써 30여 년이 다 되어가는 문예회관은 웅장한 외관과는 달리 실내는 이미 한참 전에 손을 봐야 했다. 하지만 예산은 늘 뒷전이었고 이제야 이곳저곳의 수리와 재건이 한창이다. 한편으로는 인천의 얼굴이기도 한, 회관이 공연을 할 때면 조금 낯부끄럽기도 했다. 이제라도 손을 보니 다행스러웠다.
교향악단, 합창단, 무용단과 시립극단은 한동안 다른 시설에서 공연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서울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어지간한 공연은 서울로 가는지 모르겠으나 300만이나 되는 도시치고는 문화예술의 인프라가 참으로 일천하다는 생각이 든다. 회관 근처라고 해봐야 좌우로 먹거리 타운과 로데오거리뿐이니 모두 술집이 주종을 이룬다. 혜화동하고 비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사설 연극방이라도 있으면 서로 윈윈하고 문화, 예술의 향기라도 날 텐데, 그런 것은 기대할 수 없는 환경뿐이다.모든 것이 서울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뿐이다.
사람은 어디서나 어느 때에도 누구든지자기의 주관적인 생각만을 하게 되어있다. 같은 시간이나 장소, 환경에 따라 누군가는 절체절명의 시간을 지나기도 하고 환희와 기쁨에 들뜨는 이도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딛고 있는 지금의 여기가 우리의 역할에 따른 무대인 셈이다. 한 편의 연극을 위해서는 감독이 있어야 하고 올릴 작품과 배우 그리고 각종의 기타 일을 해줄 스텝들이 필요하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무대도 비슷하여 어느 일정 시기까지는 부모가 감독 역할을 하지만, 그 후에는 스스로의 연출이 필요해진다. 자신을 통제하며 자문자답의 멀고도 기나긴 연극 한 편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생(生)이라는 무대이다. 누구도 관여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늘 되물어야 했다.
과연 나는 이 길을 갔어야 했는가?
지금 하는 일이 잘되고 있는 것인가?
헛된 야망에 시간만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그때 왜 나는 그 일을 마다 했던가? 등등.....,
우리 모두는 거대한 인생이라는 무대 위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어떤 배역을 맡을지 큰 줄기는 정해져 있다. 다만 내 일신에 관한 역할은 자기의 몫이다. 내 일생을 돌아보면, 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소 시민으로 평이하게 살아가는 역할을 선택했다. 물론 그 또한 쉬운 배역은 아니었다. 자라면서 부모님의 뜻을 헤아려야 했고, 남자로서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결혼 후,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비로도 성실히 살아가는 배역을 소화하기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살아온 이 배역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남들만큼의 벌이가 있어야 그런대로 식솔을 부양할 수 있기에 늘 갈급한 심정으로 살아야 했다. 견디기 힘든 일상을 마주할 때면 폭발할 것 같은 가슴을 부여안고 술 한잔에 의지하거나 가까운 바다를 찾곤 하였다. 서해의 바다는 별다른 감흥이 없기에 한 번은 강릉의 바다가 보고 싶었다.
새벽에 홀로 영동고속도로를 달렸다. 칠흑 같은 어둠이 오히려 마음을 평온히 달래 주었다. 한두 번 들른 휴게소엔 정적이 감돌았다. 마침내 새벽녘의 강릉 앞바다에 도착했다. 아침해가 느긋하게 떠오르니 전날의 일들이 가소롭게 생각되었다. 그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되었다. 휴일 오전의 행락차량이 빼곡히 오고 있었고 나는 되돌아가고 있었다. 혼자만의 여행은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는 생각은 그때 처음 느껴 보았다.
운명은 늘 비죽이 나의 행로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 가지 나만의 특이한 루틴이 있었다. 속절없이 주위의 상황에 따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때는 더 이상은 내려가지 않는다는 나름의 소신이자 믿음이 발동하고는 한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상태가 보이면 낙천적인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곤 한다.
그것이 한때는 나의 얄팍한 천성으로 오인되어 스스로를 자책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 순배의 인생을 살다 보니 그 또한 내가 가진 장점의 한 가지인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년이 되면 시간이 날 때마다 봉사활동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정년이 내년 말이니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처럼 쉬면서 여행도 다니고 늘어져라 쉬고도 싶지만 바로 일을 하고픈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여행도 바쁜 일상의 와중에 잠시 며칠 동안의 여유로움이지 계속되면 그 또한 별스러움은 감퇴할 것이다.
"뻐꾸기혀 수프와 부드러운 빵 한조각도 여러 날의 굶주림과 갈증을 느낀 후에야 달고 맛있지 않겠습니까?"
이문열 작가의《사람의 아들》에 나오는 이 구절은 감수성이 한창때의 사춘기에 나의 뇌리 속 깊이 인이 박혀 있다. 우리네 인생에 진정한 휴식은 없다는 생각이다. 어쩌다 하루의 잠보충을 위해 누워있다 보면 허리만 망가진 느낌을 받고는 한다. 근육이 풀어져 오히려 건강에 해로운 것이다.
맹자의 말처럼 恒産(항산)이 있어야 恒心(항심)이 생긴다는 구절을 빌지 않더라도, 무언가 일을 하는 것 말고는 평정심이 생길 수 없다는 생각은 꽤 오래된 상식일 것이다. 무슨 일이든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이다.나이가 들어 더는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일을 멈출 순 없다. 관객은 내가 무대에서 내려온 후에야 나에 대해 이런저런 평을 할 것이다. 나의 연극에 그리 많은 관객이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숙명과 같은 이 무대에서 아직 내려올 수 없다. 그것은 나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