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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Nov 03. 2023

단골

그리운 밥집들



 때가 되니 또 배가 출출해진다. 동료 몇 명과 먹거리 골목으로 자연스레 접어들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늘 가게 되는 장소가 있다. 메뉴를 굳이 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곳의 음식점들은 그런대로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몇 해 사이 많은 식당들이 사라지고 생겨났다. 구 건물을 리빌딩하거나 신축으로 주상복합의 형태로 들어서고 있다. 우린 사거리 모퉁이의 먹자건물로 갔다.


설렁탕 등의 탕류를 취급하는 나무집, 순댓국으로 나름 맛집으로 이름난 가네, 콩나물 국밥을 잘하는 콩나루, 그리고 보리밥 정식집 등 명칭도 정겹다. 아!...... 그런데....., 이 건물도 재단장을 하는지 입구에 안내문구가 쓰여있다. 모월 모일까지만 영업을 한다고 한다. 이미 콩나물 국밥집은 문을 닫았다.

'15년 동안 성원에 감사합니다. 다시 재개장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나와 몇 명은 전날의 숙취도 해소할 겸 맑은 콩나물 국밥을 먹고 싶었다. 할 수없이 아직 영업을 하는 순댓국 집으로 들어섰다. 들어설 때, 설치된 철재비계를 올려다보며 꺼림칙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점심시간인 때라 유난히 사람이 많이 보인다. 밑반찬을 받으며 언제까지 영업을 하냐고 앞자리 동료가 물었다. 며칠 남지 않은 이달 말 까지라고 한다.


 건물의 변화가 이 거리를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아직은 모르겠다. 식당들도 몇 집이나 남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사실 음식점에서의 식사는 그 정서도 큰 몫을 차지한다. 너무 새롭게 단장한 식당에서의 식사는 별 감흥이 없다. 테이블마다 키오스크가 있고, 종업원 한 명이 동분서주하는 식당을 많이 봐왔다. 업주 입장에서야 한 명의 인건비라도 절감하고픈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사람이 사라진 식당의 번득이는 기계들이 그리 좋게 보이진 않는다.



 언젠가 비 오던 날 체육행사가 끝나고 지금의 순댓국 집에서 식사를 했다. 사람들이 많아 왁자했지만, 비릿한 순댓국의 김을 쐬며 먹는 그 맛은 무엇보다 좋았다. 겉절이 김치가 금방 동나자 눈치껏 더 갖다 주는 아주머니의 손등도 정겨웠다. 그런 부수적인 여러 감정이 뒤섞여 이 집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뒤로하고, 새롭게 단장을 한 가게의 정취는 이전의 정서와 단절을 의미한다.

음식은 물론 맛이 중요하다. 하지만 맛과 함께 오감도 무시할 수 없다. 미각을 포함한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도 식당을 고르는 지표로 작용한다. 맛집으로 정평이 난, 노포(老舖) 식당을 굳이 찾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업주 입장에서는 맛에는 자신이 있기에 새롭게 시작을 하고픈 욕망이 있을 것이다. 테이블 수도 늘리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영업을 재개장한 곳의 식당을 다시 가봤다. 맛은 그런대로 예전의 것과 같았으나 뭔가 빠진 허전함은 어쩔 수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다시 찾았으나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아마도 전처럼 장사가 시원치 않았던 듯하다.


 사람의 정서는 새로운 것에 쉽게 동화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리의 속담에도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라고 하듯이, 더불어 공간에 대한 감정도 쉽게 바뀌지는 않는 거 같다. 그런 식당들을 꽤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편중된 식습관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세월이 가니 자연스레 가던 곳만을 가게 된다. 특히 식사는 모르는 곳에서 모험을 하게 되질 않는다. 집처럼 익숙하고 편한 곳이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맛도 중요하나 부차적인 조건도 만족스러워야 한다.


세치의 혀는 맛에 민감하면서 간사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자주 들락거리던 식당도 평소와 다르게 맛의 이상을 감지하면 가질 않게 된다. 요식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희로애락을 누르고 요리를 할 때면, 무념의 상태로 그릇된 분별과 집착을 떠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 그릇의 오롯한 곰탕을 낸다는 어느 노포집주인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음식을 누군가에게 낸다는 것은 의사의 약처방 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몸을 위해 보약을 지어먹는 것보다 한 그릇의 밥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약보(藥補)보다는 식보(食補),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심보(心補)라고 한의학 서적인 《황제내경》에도 정의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무릇 음식업을 하시는 분들은 말없는 소비자를 오히려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 또한 맛에는 간사하며 분위기를 중요시하니 말이다.


날씨가 흐리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다. 추어탕이 생각나고, 그러면 그 집이 생각난다. 오래간만에 가는 곳이라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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