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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Oct 19. 2023

역전세

재계약 40% 감액 요구하다



딸아이의 아파트 2년 만기 기간이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 재계약 조건을 말해야 한다. 미친 듯이 오르던 집값이 꺾이더니 어느덧 하릴없이 전국 1위로 떨어졌다. 아내를 채근해 무슨 내용의 통화를 해야 할지 주지 시켰다. 집주인이 아내와 비슷한 연배의 여성이었고, 사는 동안 몇 차례 아내와 통화를 했기에 내가 하는 것보다는 부담감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2021년 7월 여름 더워가 한창일 무렵, 나와 아내는  딸아이의 집을 옮겨주려 여기저기 헤집고 다녔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쳐 전세 아파트 얻기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8월부터 세종시에서 근무해야 하는 딸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구해줘야 했다. 26평 전세 평균가가 3억 원 정도였다. 너무 비쌌다. 딸이 모은 금액과 내가 보태준 액수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대출비율을 너무 많이 잡게 할 순 없었다.



더운 여름 여기저기 알아보니 괜찮은 단지가 보였다. 교통망도 좋고, 근처의 인공하천이 무엇보다 맘에 들었다. 마침 1층의 매물이 있어 중개사와 빈집을 둘러봤다. 아파트 1층은 인기가 없지만, 딸애는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싫어하기에 적당해 보였다. 천만 원을 더 깎아 2억 4천에 전세 계약을 마쳤다. 딸아이는 이 년여를 잘 살았다.



작년부터 내림세로 돌아선 아파트 시장은 급매물이 아니면 거래가 안될 정도로 얼어붙었다. 내 경험으로도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판세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코로나 시국의 제로금리 영향이 가장 큰 영향이 있었겠지만, 너무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세입자인 딸애 입장에서는 호기를 맞은 셈이다. 그렇다고 부모입장에서 넋 놓고 바라만 볼 수는 없었다. 업무가 산더미 같아 저녁 11시 퇴근도 이른 아이를 어떻게든 뒤를 봐줘야 했다.



아내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재계약 문제를 거론했다. 아내와 나는 1층인 점을 고려해 1억 5천만 원 선에서 +2천만 원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선수를 치고 나왔다. 집값이 하락세라 1억 9천에서 8천까지 생각해 주는 척 말을 꺼냈다. 아내는 이런저런 사정과 실제로 3월에 3층에서 1억 5천에 거래된 집을 상기시켜 주었다. 서로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된 셈이었다. 딸애의 전세자금대출 이자가 백만 원을 넘기기에 어떤 식으로든 부담을 줄여줘야 했다. 집주인은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을 하고, 그날의 통화는 끝을 맺었다.

사실 집의 전세권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제도적 요소를 품고 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전세제도는 그 옛날 도지권에서 유래가 되어 소작인과 지주의 관계형성 과정에서 거주지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월세를 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목돈을 주인을 믿고 맡겼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나 이런 시국에 보도에 나오듯이 전세사기가 판을 치는 형국에는 아무런 지주대 없이 누워있는 불안한 둥지 이상도 아닐 것이다.



연락을 준다던 집주인이 두어 달이 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아내는 혹시나 뭉개고 있으면 집주인에게 유리한 자동 연장 재계약으로 될 줄 알고 연락이 없을 수도 있다고 흥분했다. 기분을 가라앉히고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전화를 하니 정작 집주인은 사과는커녕 환급해 주는 구천만 원의 이자분을 요구했다. 뭔가 잘못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계약기간이 한참 남은 기간에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꽉 채운 상태에서 미리 준비기간도 줬건만 자기에게 불리하니 생떼를 쓰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참고 있던 아내가 드디어 폭발했다.


"분명히 석 달 전에 연락을 해서 상의를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희로서는 기한 종료일에 맞춰 집을 나갈 테니 전세금 빼주세요!....., 만약 기일 내 전세금 반환 못하시면 임차권 등기와 반환소송 들어갑니다!"


아내가 그렇게 말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근처의 다른 아파트 전세가를 중개사를 통해 집구경도 한 적이 있었다. 빈집이 몇 군데 돌아보고 지금 살고 있는 26평형보다 넓은 34평형도 1억 9천만 원이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거래가에 전세금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집주인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당사자인 딸에게 전화를 하여 우리 쪽의 요구대로 해줄 테니 재계약을 하자고 전화가 왔다고 한다.



결국 우리 뜻대로 거의 1억 원의 전세금을 낮추고 재계약을 하게 되었다. 이사 갈 생각도 딸애와 해봤지만 교통여건이 좋고, 세든집을 바꿔봐야 이사비용과 그 밖의 잡비를 생각하면 재계약이 유리했다. 삼 개월이 넘게 은근히 신경 쓰이던 딸아이 집문제가 해결되었다. 딸아이의 부담도 확 줄었다. 7천만 원 정도만 청년 버팀목 전세대출을 2%대로 갈아탈 수 있었다. 재계약을 하던 날 집주인은 나를 보자 반색을 하고 아내가 같이 오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좋은 결정으로 우리 딸애의 부담을 줄여줘서 아비로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집주인도 딸에게 연신 "잘 살아요! 아가씨!" 하며 웃음으로 화답을 하고 돌아갔다.



일생을 살아오면서 이러한 역전세의 경험은 처음이었다. 한동안 이유도 모르고 미친 듯이 오르던 집값이 잦아들더니 기어이 예년 수준으로 돌아오는 경험은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의 제로금리 여파가 한몫 거들었고, 유난히 편중된 쏠림으로 움직이는 대중들의 속성이 만들어낸 웃지 못할 긴 파동의 여진으로 많은 사람들은 속앓이를 할 것이다.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항목들이다. 특히 집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치부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한창 오름세가 가파를 때는 쳐다보기도 버거울 만큼 천정부지로 솟구쳐 너도나도 빚내기를 해서 광풍이 일었다. 전세사기도 극성을 떨어 지금껏 그 후유증에 불안한 둥지를 놓고, 몰려서 탄원을 넣는 중이라는 보도가 연일 나온다.



청춘남녀들이 결혼도 출산과 육아에도 관심이 적어지는 것은 환경이 뒷받침 돼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쟁에 밀려 정책은 늘 겉돌고 고령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만이 드리우고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이미 실기(失期)한 것이 아니길 바라지만 사회의 활기를 불어넣을 청년 대책은 미비해 보인다. 안정된 사회가 되고 정책적으로 뒷받침이 되어 청춘남녀들이 사랑을 하고 결혼을 망설이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한다. 둥지가 튼튼하다는 믿음이 생겨야 새들도 알을 낳듯이, 주거가 안정이 되어야 인구절벽이란 신조어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 사회의 대내외적 환경개선의 여지는 아직도 여전히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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