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젠 끊어야지, 하면서도

담배에 관한 명상

by 포레스임

담배
흐르는 물에 쪽배 한 대 띄우고 고즈넉이 노를 저으니 무릉이 어드메뇨, 허공에 아득히 퍼지는 그리운 향수는 누구의 얼굴입니까
불을 댕겨 온몸을 소지하고 내 속을 다녀 다시 공간을 누비는 하얀 구름은 떠나온 시간에 이별을 고합니다
쓰디쓴 입맛을 다실 적에 미소도 같이 여울져 사라지고, 뭉게구름처럼 소망이 꿈틀대면 한숨처럼 흰 커튼을 드리운다
인연을 도리질하고 몇 번을 너와 헤어짐을 연습했건만, 이렇게 또다시 마주하고 보니, 잊힌 나를 본 듯 떨리는 손가락 사이가 그득하게 피어오른다
삶은 연기와 같이 너른 하늘로 피어오르는 것, 인연의 바다에서 너를 만나 옥죄는 운명의 소용돌이 고비마다 나를 곁부축한, 가여운 이파리 덩어리




시라고 쓰면서도 쓴웃음이 나왔다. 담배 끊기는 애당초 글러먹은 정신상태, 나에게 담배와의 인연은 질기고도 얄궂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 조부모님 댁에서 자랄 적에, 안방의 한 모퉁이에는 재떨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애연가인지라 재떨이 비우는 건, 늘 내 몫이었다. 두 분이 마주 보며 담배를 태실적에, 나는 한쪽 구석에서 그윽한 그 냄새를 맡으며, 배를 깔고 학교숙제를 하곤 했다. 요즘의 환경위생기준으로 보면 야만스러운 장면 이겠지만, 그 시절은 누구나 할 거 없이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었을 게다. 그렇게 담배는 친숙한 어른들의 기호품이었다. 한 번은 사촌동생과 다락에 숨어, 그 맛이 궁금해 뻐끔거리다 목기침을 한참 하니, 다락문이 벌컥 열리고는 할머니께 종아리 세례를 받은 적도 있다.


군대에 입대하니 '한산도' 담배가 지급되었다. 낮에는 각개전투 훈련으로 초주검을 만들더니, 저녁식사를 하고 한 시간의 휴식 후, 야간사격 훈련소집 명령이 내무반마다 떨어졌다. 3월 초, 낮과 밤의 온도차가 도시와는 전혀 다른 전라도 어디쯤의 훈련소는 유난히 어깨를 움츠리게 했다. 첫 사격훈련인 만큼 긴장도 되고 통제도 엄격하여, 행여 실수들을 염려해서인지 교관들은 큰소리로 주의사항을 일러 주었다. 몽롱한 정신에 얼차려 몇 번을 받고 나니, 콧물과 눈물이 뒤섞인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교관 한 명이 갑자기 큰소리의 명령을 하달했다. "이순신 장군의 기백이 너희에게 전해지도록 한산도 담배 일발 장전!" 그렇게, 처음에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담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담배가 공공의 적으로 인식이 되더니, 금연구역이 점차 확대되고 이제 흡연자는 설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내 더러워서 끊는다" 하지만 작심은 삼일을 넘기기 어렵다던가? 이틀만 지나도 생목이 오르고, 금단증상은 끊이질 않아 결국 입에 물게 되곤 하였다.




나이 들어하고픈 공부를 시작하면서 독하게 마음먹고 담배를 끊기로 결심하였다. 먼저 보건소 금연클리닉을 찾았다. 금연침을 귓불에 맞고, 주의사항과 금연패치를 받아 들고, 담배는 이번생에 인연이 끝났다고 다짐을 하였다. 생활의 변화는 담배를 잊게 해 주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자연스레 담배는 멀리하게 되었다.


일 년의 시간이 지나니 담배냄새가 역하게 다가왔고,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자연스레 피하게 되었다. 담배를 피웠던 지난날의 나를 완전히 지웠다. 금연의 효용은 신체변화로도 찾아왔다. 우선 목에 무언가 걸린 듯한 느낌에서 부드러워졌다. 호흡이 편해지고 무겁던 아침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집식구들이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눈길에서 석 달쯤 지나니 칭송이 이어지고, 격려하며 생즙 주스 제공 등의 정성이 지극해졌다. 그렇게 금연은 성공적이었다.


금연 이 년 차에 접어드니 자연히 담배는 더 이상 뇌리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삼십 년 가까이 피웠던 담배는 어느 날 갑자기 유혹의 향기로 다가왔다. 아침부터 비가 오고 퇴근 후, 회식이 있어 어느 건물 고깃집 2층에서 떠들썩하게 회포를 푸는 중이었다. 하나둘씩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가는 친구들이, 바로 아래 흡연코너에서 불을 붙이는 모습이 창가자리인 내 눈에 보였다. 더구나 그들이 피우는 담배연기가 내 자리로 올라오니, 비 오는 풍광과 흐릿한 저녁 어둠이 묘하게 흡연욕구를 자극하였다. 어느새 발걸음이 그들에게 향하더니, 담배하나를 얻어 붙이고는 피워 물고 말았다. 그걸로 2년 동안의 금연은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급성 위궤양으로 입원 후, 퇴원을 하고 석 달 동안의 금연이 다였다. 최근엔 작년 초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두어 달 정도 금연 한 적이 있었다. 담배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유령처럼 원치 않는 장소와 환경에서 불현듯 나를 불러 세우고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담배이야기를 쓰는 것도 금연 의지를 다시 세우기 위한 발버둥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병원 호흡기 병동의 중환자실에서 폐암으로 고생하는 노인분들을 본 적이 있다. 하나같이 이런저런 의료장비를 전선줄과 호스로 연결되어, 주렁주렁 매단 체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젊은 시절이지만, 그때도 담배를 더 이상 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었다.


이젠 정말 끊어야겠다. 나이도 나이거니와 답답한 것을 잘 못 참는 내 성정에 비추어, 내 마지막을 그렇게 답답한 곳에서 끝내고 싶지는 않다. 부드러운 목으로 크게 호흡하고, 향기로운 풀내음과 꽃내음도 맡아보고 싶다. 잃어버린 내 미각과 후각을 되찾아야겠다.


애연가 여러분, 우리 또 시도해 봅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작, 그 또 다른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