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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Dec 25. 2023

퇴근을 기다리며

우리는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휴일 당직근무 세 명이 모였다. 벌써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니, 한 해가 다 가고 있었다. 며칠 후면 해가 바뀌니 문득 집에는 없는 달력을 쳐다봤다. 물 때가 기록된 걸로 보아, 수협에서 나온 신년 달력이었다. '甲辰年' 내 눈은 세자에 꽂혔다. 내년은 갑진년이었다!......

내가 갑진생이니, 벌써.....,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이렇게 거리가 멀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回甲(회갑)은 한 갑자가 돌아온다는 의미다. 그럼 나는 한 갑자를 살아 내년이면 예순 살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생이 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어리하게 살다 보니 나이들 준비도, 감정도 안돼있는데 벌써......., 생각처럼 시간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모두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시간은 자기 갈길을 갈 뿐이었다.



J팀장은 무언가 정리할 일이 있는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왼편 소파의 M은 TV를 켜고 보는 둥 마는 둥 스마트정보를 캐느라 폰에 열중하고 있다. 늘 봐오던 모습이라 낯설지 않았다. 리모컨을 쥐고 여자프로배구 경기를 틀었다. 마침 인기스타 배구선수가 뛰는 팀의 경기였다. 한 점, 두 점 앞설 때마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입은 삐죽이 내밀며 다소 친밀하며 해학적인 모습으로 경기를 지켜보게 한다.


"배구하네요! 스코어 재밌겠는데요!"


어느새 J팀장이 내 옆에 앉아 있었다. 72년 생이니 오십 초반에 들어선 이 친구는 성격이 치밀하고,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야 자기만족을 하는 직원이다. 간혹 그 정도가 심해 마찰이 없지 않지만, 나는 내가 가지지 않은 그 치밀함이 좋았다. M도 우리 둘이 두런거리자 폰에서 눈을 떼고, TV로 눈을 돌려 특유의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합류했다. 처음 만났을 때, 서른아홉으로 알고 있으니 벌써 사십을 넘기고 있다. 이렇게 셋이서 배구 경기를 TV로 지켜보게 되었다.


창밖을 보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아마도 점심때쯤은 소화도 시킬 겸, 중요지점은 제설작업을 해야 할 듯하다. 상대팀과 주고받는 랠리가 제법 길어진다. 결국 김연경의 마무리로 긴 랠리가 끝났다.


"마무리 해준 세터가 누구지? 기가 막히네! 넘어지면서도..., 어.. 우!  히야!"


M도 궁금했는지 다시 폰을 뒤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J도 폰을 만지작 거린다. 속도는 늘 젊은 만큼 M이 빠르다. 선수명이 바로 나온다. 그의 검색속도는 경이로울 지경이다. J는 여자프로 배구팀의 순위를 꿰고 있었다. 김연경의 팀이 압도적인 경기를 하지만 더 대단한 팀이 있는 모양이다. TV로 보는 경기보다 나는 두 직원의 대화에 빨려 들어갔다.


문득 출근할 때의 풍경이 기억났다. 누구 하나 스마트한 구속에서 벗어날 줄 몰랐다. 전철 안의 사람들은 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휭단보도의 잠시 대기하는 그 틈에도 폰은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세상 모든 정보가 그 안에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2007년 새해 벽두에 청바지에 검은 목폴라 T셔츠를 입은 중년의 남자하나가 신제품 홍보를 한 적이 있다. 각종의 매체는 서로 각축을 벌여 보도를 하니 모를 수가 없었다. 뭔가 대단한 발명이라도 한 듯이, 그의 파워풀한 폼은 그럴싸했다. 언 듯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스티브잡스의 폰은 우리의 관습  즉, '한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굳어진 전통적 행동 양식이나 습관'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것도 글로벌하게 말이다. 이놈이 없는 하루의 생활은 속 빈 강정 같을 것이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이후, 한 번도 스스로 닫아버린 예가 없으니 말이다.


스마트 폰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손에 쥐어지는 크기의 이 물건은 그 편리성만큼 사람들의 동공을 놔주지 않는다. 어떤 생각을 하든 심지어 생각을 안 하는 동안은 무료해서라도 우리는 폰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이 사라진 것이 가장 큰 폐해라는 생각을 해본다. 검색은 하되 사색은 귀찮다. 내 생각조차도 검색을 해보면 어딘가 찾을 수 있다. 그러니 굳이 생각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어딘가 내 생각과 느낌을 그려 넣은 콘텐츠가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검색만 하면 되니까. 참 편리하면서 공허한 세상이다. 인간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빼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그나마 나는 브런치라는 인터넷 바다의 한쪽 모서리에서 이렇듯 글을 올리니,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유... 후! 역시 김연경이네요!"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경기가 끝났다. 그녀의 팀이 환호하는 장면을 끝으로 TV를 끄고 점심을 먹고, 쌓인 눈을 치우러 넉가래를 찾아 하나씩 들었다. 북쪽의 주차장은 출연진과 공연에 필요한 짐차가 상시 출입을 하는 곳인데, 출입구의 경사가 심해 필히 눈을 치워야 했다. J는 제설함의 염화칼슘 자루를 뜯어 뿌리고, 나는 넉가래를 들어 눈더미를 밀었다. 손은 좀 시리지만 지날수록 트이는 맨바닥에 한쪽 구석으로 모는 눈더미가 제법 쌓여간다.


기계실 당직원이 휴대용 엔진무선 송풍기를 가져왔다. 시동을 걸자 주차라인이 시원하게 트여 보인다. J와 나는 서로 쳐다보았다. 넉가래보다 훨씬 눈을 치우기에 적합해 보였다. 미는 방식보다 불어서 날리면 끝인 것을 진작에 저것을 썼어야 했다. 비죽이 웃으며 뒤돌아 섰다.


"기계들이 어디까지 발전할까요!"

"글쎄! 그런 걸 누가 알겠어!"


J는 가끔씩 뜬금없는 질문을 해댄다. 철학적인지 인문학적인지 모를 말을 하는 그와의 대화는 선문답으로 이어지곤 했다.


"무대의 배우들은 역할에 따른 대사를 무슨 정신으로 말할까요? 또 다른 신내림 같은 것이 있을까요?"

"글쎄........, 신내림?...., 에이! 그 정도 까지야 가려고!"


이 친구와 평이한 대화를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업무에 관해서는 상투적인 몇 마디뿐이고 그 외에는 조금은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편으론 나는 그와의 대화를 즐기는 편이기도 하다. 아련히 잊고 있던 심리적인 문제에 관한 것과 정치적인 성향이 맞는 편이라, 편집증적으로 토해내는 제도적 오류에 대해서도 그와는 궁합이 맞는 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대화를 할수록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한계적 상황이 그득한 원인분석의 말을 하다 보면 결국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가 되곤 한다. 부조리한 세상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니 말이다.


오후 당직자들이 왔다. 드디어 퇴근 시간이 되었다. 직장 뒤편의 공원을 가로질러 전철역으로 간다. 겨울나무들은 오전 눈발에 흰옷을 한벌씩 입고 있었다. 처연한 모습이지만 사시사철 수많은 사람을 품었던 바쁜 역할의 공원은 모처럼 숨을 쉬는 듯하다. 오후의 긴 그림자는 하루를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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