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지난 아들에게 전하는 세 번째 편지
유유야
너의 엄마는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아빠와 결혼하게 되었다.
아빠는 엄마를 처음 본 순간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오더라. 참 신기하지?
다른 사람들이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느낌이 온다고 하던데 아빠는 엄마를 보는 순간 '운명'임을 직감했지
너도 알다시피 엄마와 아빠는 10살 차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냐? 열 살 많은 아저씨가 자기 좋다는데.
아빠가 엄마의 나이를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었으니 나이 차이 많이 난다고 좋아한 건 아니다 허허
30대 중반이었던 아빠가 그 당시에 소개팅을 아홉 번이나 했는데
아빠의 마음이 움직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엄마를 처음 본 순간 느낌이 오더라
엄마가 예쁘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아빠가 그려왔던 이상형이더라고.
(아빠는 이상형이랑 결혼했다 유후~)
자존심도 내려놓고 아빠를 밀어내려는 엄마의 주위를 계속 맴돌고
어떻게든 마음을 얻어보려고 직진했지. (직진남이라 불러다오 허허허)
세 번이나 거절당했지만 6개월 뒤 엄마가 아빠의 마음을 받아주더라.
아빠가 진심이라는 걸 엄마는 알고 있었거든
아빠는 엄마한테 처음부터 결혼하자고 했었기에(그 당시의 아빠는 엄마한테 좀 미쳐있었다 물론 지금도 ^^)
엄마는 아빠의 마음을 받아주면 결혼해야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결혼을 염두한 상태였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만 허락하시면 결혼은 일사천리였지만 (너의 이모한테는 이미 합격점이었다 허허)
당시에 공시생이었던 엄마와 연애를 한 걸 아시고는 아빠를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지
10년에 한 번 화를 내신다는 외할아버지가 아빠를 만나기 한 시간 전까지 엄마에게 크게 화를 내셨고
외할머니는 만나는 주겠지만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집에 가버리겠다고 엄포하실 정도였으니
아빠는 두 분을 뵙는 그날이 인생 결전의 날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안될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지
아빠의 긍정적인 성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자신 있었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만나기 몇 달 전부터 두 분이 어떤 질문을 하실지에 대한 예상 질문과 답변을
메모장에 적고 수천번을 시뮬레이션을 하곤 했지.
결전의 날.
너의 외갓집 근처 한 식당에서 두 분을 처음 뵈었는데 외할아버지가 아빠를 보는 시선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정말 한마디 말씀도 안 하시고 아빠를 쳐다만 보시더라고
아빠가 준비한 선물을 드렸는데 안 받으셔서 외할머니께 드릴 정도였다 (후덜덜...)
엄마는 죄인인양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고 아빠는 외할머니와 이야기를 했지
당시에 아빠는 외국에서 파견을 온 상황이었고 외할머니가 아빠의 신분을 의심하셨었기에
아빠가 주민등록증, 여권, 명함, 사원증을 챙겨갔었고 이야기하는 도중에 두 분께 보여드렸는데
그때 분위기가 조금 좋아지긴 했지
그러다 한마디 말씀도 없던 외할아버지께서 질문 하나를 던지시더라
자네, 꿈이 뭔가?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혼했고 서른이 넘어가면서 주변 친구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
이혼하는 친구들도 보면서 생각했지.
평범하게 사는 게 쉽지 않구나.
돈이 많고 가진 게 많은 것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
서른 초반부터 이어진 생각이었는데 엄마를 만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걸 생각하니
아빠가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었던 꿈,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보다
내 가정을 잘 지켜야 된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더라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혼으로 인해 자식인 아빠가 받았던 상처와 고통은 절대 내 아이에게 주지 않겠다
이것만큼은 내가 지키겠다는 것이 강했는데 이 생각들이 모이고 모이다 보니 아빠의 꿈은 하나더라고
저의 꿈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입니다.
외할아버지는 아빠의 대답을 듣고 아무 말씀 안 하셨어
그 이상의 질문도 하지 않으셨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랑 정확히 한 시간을 이야기했는데 정말 네 명 다 한 숟가락도 못 먹었어
아빠는 태어나서 밥 맛이 없다는 걸 처음 알았고 분위기는 나쁘지 않게 흘러갔고
이야기가 끝나고 두 분은 집으로 가셨어
엄마랑 아빠는 그제야 긴장이 풀려 배가 고파와 다 식은 밥을 허겁지겁 먹었지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도 제대로 못 들었다고 하더라고
밥을 다 먹고 엄마가 좋아하는 배스킨라빈스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엄마가 이모한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아빠에 대해 어떻게 보더냐며 물었어
이모가 그러더라
너무 마음에 든데
엄마랑 아빠는 환호성을 질렀지! 야호~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외할아버지가 아빠를 따로 만나자고 부르시더라고
집 근처 작은 술집에서 처음으로 외할아버지와 독대했는데 처음 뵌 날과는 달리 온화한 눈빛으로
아빠를 봐주시고 말씀도 많이 해주시더라고
내가 물었던 질문에 했던 자네의 대답,
내가 원하는 것 그대로였네
그 뒤로 더 이상 물어볼 것도 없었네
외할아버지는 '행복'이라는 걸 중시하는 분이고 가족이 최우선이라 생각하시며
남자는 가족을 위해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며 가족이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야
또 그렇게 살아가시는 분인지라 그날 아빠의 대답을 듣고 딱 마음에 들었다고 하시더라고
그런 장인어른을 모시는 게 참 행운이고 인생의 롤모델로 삼고 많은 조언을 구하고 있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 효도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두 분을 모시고 큰 집을 지어 사는 것이 목표란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네가 하는 모든 결정의 기준은 너의 '행복'이길 바라본다.